김아무개씨가 장기기증본부에 보낸 유서
“한 많은 세상…필요한 사람에게 장기를”
“저는 강동구 암사1동 5층 옥탑방에 살고 있는 가족이 없는 독신자입니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분부 회원입니다.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 한 많은 세상을 떠나려 합니다. 저의 시신 가운데 모든 부분은 장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여 주십시오. 2008년 12월3일 김○○”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 지난 4일 우편물 한 통이 도착했다. 우편물에는 붉은 막도장이 찍힌 김씨(68)의 유서와 장기기증등록증, 주민등록증이 담겨 있었다. 유서에는 ‘월세 보증금 300만원으로 주검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도 함께 쓰여 있었다.
장기기증본부 관계자들은 김씨의 유서를 받자마자 경찰과 함께 김씨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목을 매 숨진 뒤였다. 경찰은 김씨가 ‘유서 편지’를 보낸 뒤 곧장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암사1동 주민자치센터 등의 말로는, 김씨는 서울 강동구 한 옥탑방에서 홀로 살아온 기초생활수급자다. 어릴 적 북한에 가족을 두고 내려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지금껏 혈혈단신으로 살아왔다. 젊은 시절 한때 건설업체 최고경영자까지 지냈지만 사업확장 과정에서 보증을 잘못 서 전 재산을 잃었다고 한다. 이후 김씨는 건설사무 보조일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이런 속에서도 김씨는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던 2005년에는 장기기증본부에 장기기증을 등록했다. 정부에서 나오는 수급비 43만원 가운데 다달이 5천원을 떼어 후원금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현정 암사1동 사회복지사는 “얼마 전 수협에서 할아버지한테 쌀·라면 등을 후원하겠다고 했는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한테 주라’며 극구 사양하셨다”며 “이따금 집에 찾아가면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셨는데 …”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김씨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장기 기증은 이뤄지지 못했다. 주검이 너무 늦게 발견돼 각막 기증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김씨의 장례는 장기기증본부 직원 한 명이 상주를 맡아 치르기로 했다. 빈소는 고대안암병원에 마련됐으며, 그의 주검은 6일 발인을 마친 뒤 고려대 해부학 교실에 기증된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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