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불합리한 불기소 처분에 대한 최초의 손해배상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세 차례나 재기수사명령이 내려졌으나 불기소한 ‘엘지전자 사내 집단따돌림 사건’에 대해 검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부(재판장 김주원)는 전 엘지전자 직원 정국정(45)씨가 “구자홍 엘에스그룹 회장(전 엘지전자 회장) 등을 고소했으나 검찰의 무성의한 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정씨는 1996년 본사와 하청업체 사이의 비리 의혹을 회사에 알린 뒤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 2000년 2월 직무 태만 등의 이유로 해고됐다. 엘지전자는 같은해 7월 “정씨가 ‘왕따 전자우편’을 위조했다”며 오히려 정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정씨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정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이 회사 김아무개 대리는 위증죄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정씨는 자신을 고소하거나 이를 지시한 혐의(무고 등)로 구 회장과 한아무개 상무, 김 대리 등을 고소했으나,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지검은 서울고검이 세 차례에 걸쳐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는데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재기수사명령이란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에는 수사가 부족하므로 보강 수사를 하라는 명령이다.
재판부는 “세 차례의 재기수사명령은 국가기관 내부의 의사결정에 불과하며, 재기수사명령이 재기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의 판단을 구속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1심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합리성이 없는 위법한 판단”이라며 국가가 1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같은 재판부는 정씨가 엘지전자와 구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2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정씨는 “한 상무 등은 검찰 조사에서 ‘문서 조작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고 1심 재판부도 이 점을 인정했다”며 이번 판결을 비판했다.
한편, 서울고검은 7일 수사 검사가 법리 오해 등 과오를 범해 불기소처분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하거나 재기수사 뒤 기소한 경우 이를 인사평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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