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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장애인 서빙카페 있었네

등록 2005-05-09 19:11수정 2005-05-09 19:11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랑의 교회 안 카페 사랑샘에서 일하며 삶의 보람을 찾는 장애인 이영은, 송영일씨(왼쪽부터).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랑의 교회 안 카페 사랑샘에서 일하며 삶의 보람을 찾는 장애인 이영은, 송영일씨(왼쪽부터).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핫초…코…, 생…강차…, 감사…합니다….”
바쁜 세상 느림의 여유 “분위기 편안해요”

6일 저녁 주말의 번잡함 속에 파묻혀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의 한 카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통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 ‘사랑샘’의 시간은 바깥과는 달리 느리게 흘렀다.

단정한 머리에 푸른색 앞치마를 두른 송영일(33)씨는 주문받은 음료를 주문표에 느리게, 그러나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영일씨는 2001년 10월 카페가 문을 열 때부터 일해 온 ‘최고참’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넓은 카페 안에 흩어져 있는 17개나 되는 테이블 번호가 모두 입력돼 있다. 그런 영일씨이지만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봐 주문받은 음료를 혼잣말로 두번 세번 되풀이한다.

영일씨가 주문을 받는 동안 정신지체 3급인 이영은(22·여)씨는 손님이 떠난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조심조심 주방으로 옮겼다. 느린 발걸음이지만 차분하다. 올해 초부터 카페에서 일을 시작한 ‘왕초보’ 영은씨는 아직은 일이 손에 익지 않다. 그래도 구석구석까지 닦는 꼼꼼한 행주질에 테이블은 금방 반질반질해졌다.

2호선 강남역 근처 `사랑샘'

빠름의 미덕이 뿌리 깊게 내린 강남.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느림의 섬’ 사랑샘은 일을 통해 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사랑의 일터’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려도 있었다. 단순한 일이긴 하지만 도움만을 받던 이들이 ‘비장애인’을 ‘서빙’해야 하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방일을 맡은 비장애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근무자 모두가 장애인들이다. 저녁 시간에 일하는 영일씨와 영은씨말고도 다운증후군을 앓는 남연경(31·여)씨와 김현민(23·여)씨가 한조를 이뤄 오전 근무를 한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랑의 교회 안 카페 사랑샘에서 일하며 삶의 보람을 찾는 장애인 남연경, 김현민, 송영일, 이영은씨(오른쪽부터). 이들은 2명씩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송씨와 함께 카페 창립 멤버인 연경씨는 4년 전만 해도 웃는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뚱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서빙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서비스 정신’에 눈을 떴다. 연경씨의 얼굴도 몰라보게 환해졌다.

“주문을 받다 말고 갑자기 자리를 뜨거나 1번 테이블로 갈 음료를 11번에 가져가는 등 실수들이 끊이질 않았죠.” ‘사랑의 일터’ 김주애 사회복지사는 “여전히 컵을 깨기는 하지만 한 달에 450여만원을 거뜬히 벌어들인다”고 자랑한다.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월급과 재료비, 자활공동체 운영비용으로 모두 사용된다.

손님들 "분위기 편안"

가끔 성질이 급한 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낯선’ 종업원의 모습과 행동에 당황하던 손님들도 어느덧 이들의 느린 속도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가격이 싸고 조용해 점심때면 머리를 식히려는 인근 회사원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손님 박지은(22·여)씨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웃으면서 주문을 받는 모습이 일반 카페와 다르지 않다”며 “분위기가 편안해 자주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초동 집에서 카페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영일씨가 가장 잘하는 것은 설거지. 반면 돈 개념이 부족해 계산은 절대 사절이다. 서빙만 4년째다 보니 단골손님도 생겼다. 백발의 할아버지 두 분은 저녁마다 카페를 찾아 영일씨에게 오렌지주스를 주문한다.

“손님… 없으…면 심심해….” 손님이 없으면 ‘우울해진다’는 영일씨의 말에 영은씨가 “바쁘면… 좋…아요”라며 밝게 웃었다. 사랑샘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살아 있는 샘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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