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배재철 한양대 교수(39)가 17일 도쿄 하쿠주 홀에서 복귀 공연을 끝낸 뒤 관객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배재철 교수, 갑상선암 수술 3년만에 복귀무대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흔히 듣는 커튼콜 이상의 울림이었다. 17일 오후 8시께 도쿄 시부야의 공연장 ‘하쿠주 홀’은 ‘비운의 테너’가 ‘기적의 테너’로 다시 태어나는 현장이었다.
‘아시아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성악가’라는 찬사를 듣다가 갑상선암으로 성대 신경이 끊어져 말도 제대로 못 하게 됐던 배재철(39) 한양대 교수가 기적적으로 목소리를 회복해 3년 만에 공식 무대에 섰다. 조심스레 무대에 올라온 배 교수는 첫번째 곡 고음 부분에서 음정이 조금 불안하고 목소리도 갈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곡이 진행될수록 목소리도 안정돼 갔다. 수술 전보다 오히려 표현력이 훨씬 풍부히 묻어났다.
관객 도쿠시게 구모이(72·여)는 “예전에는 고음 부분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울림을 들려줬다면 이번에는 저음의 울림이 더 깊어졌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배 교수의 ‘부활’은 관객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갔다. “신은 어떤 분인가, 배 교수의 노래를 통해 듣게 됐다.”(나카지마 후미에·68) “병든 친구에게 이 감동을 전달하고 싶다.”(아라이 다케미·59) 지난해 12월 배 교수에 대한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일본 <엔에이치케이>(NHK)도 19일 밤 9시 메인뉴스에서 이 복귀 무대를 기적이라고 표현하며 상세히 전했다.
성악가로서 절정기를 맞았던 2005년 10월, 배 교수는 갑상선암으로 나락에 떨어졌다. 1~2초 이상 발성하기도 힘들었다. 그가 목소리를 되찾고 무대로 돌아오게 한 것은 강한 의지와 그를 아끼는 이들의 응원이었다. 그가 복귀무대를 일본에서 택한 것도 일본의 지인들과 팬들이 그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2004~2005년 배 교수의 일본 공연을 기획해 ‘클래식 한류 붐’을 일으켰던 음악프로듀서 와지마 도타로(45)는 ‘갑상연골성형수술’의 창안자 잇시키 노부히코 교토대 명예교수를 찾아내 수술을 맡기는 등 도움을 줬다.
배 교수는 1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수술 이후 하루 2~3시간씩 꾸준히 발성과 호흡 연습을 해온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애초 무대 복귀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었으나 관객들이 제 상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실수해도 이해해 줄 것이라 믿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절정기 목소리의 절반밖에 회복되지 않았지만 노래하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며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와지마는 “배 교수는 과거 초일류 오페라가수에서, 지금은 희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예술가가 됐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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