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도입 백지화
‘양심적 병역거부 보장’ 8년 논의 원점으로
“2009년부터 시행” 1년전 약속도 ‘없던 일’
‘양심적 병역거부 보장’ 8년 논의 원점으로
“2009년부터 시행” 1년전 약속도 ‘없던 일’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 방침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단순히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반사회적 행위로 치부되던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가 인권 차원에서 조명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오태양씨를 필두로 유호근·나동혁·임재성씨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적 배경을 지닌 젊은이들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잇따르면서 이 문제를 ‘양심의 자유’와 ‘인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커진 것이다.
국가기구에서도 문제 제기가 나왔다. 2002년 박시환 당시 남부지법 판사(현 대법관)는 병역법의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했고, 2004년 헌법재판소는 ‘7 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국회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2005년 12월엔 국가인권위원회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헌법과 국제규약상 양심의 자유와 자유의 보호 범위 안에 있다’며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국방부가 지난해 9월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추진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 국방부는 “내년(2008년) 말까지 병역법과 사회복지 관련 법령, 향토예비군 설치법 등을 단계적으로 개정하면 2009년부터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정표까지 제시했다.
이런 사회적 논의 과정과 성과를 무시하고 국방부가 다시 태도를 바꾼 것은 최근 정부·여당의 ‘인권 역주행’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논란이 재연되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는 국제적으로도 기본 인권의 하나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현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85개 나라 가운데 35개국이 대체복무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인 대만도 2000년부터 대체복무를 허용했고, 아랍권과 무력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도 종교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유엔은 1966년 유엔 인권규약 18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확립했고, 87년과 89년, 93년, 95년, 98년 등 5차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정당한 권리 행사임을 확인하는 유엔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국방부가 대체복무제 백지화의 근거로 여론조사를 제시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론조사는 시점이나 설문 문항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는 지난해 9월 대체복무제 도입 방침을 밝히면서 “2007년 7월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찬성 비율이 50.2%에 이르렀다”며 지금과는 상반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추진 이유로 내놓은 바 있다.
애초 국방부가 추진한 대체복무는 강도가 높다. 소록도 한센병원 등 국립 특수병원과 노인 요양시설에서 합숙하며 환자 수발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간도 현역의 두 배인 36개월로,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가 넘는다면 징벌’이라고 명시한 유엔 인권결의안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이마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해마다 500~800여명의 젊은이가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다 감옥에 가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얘기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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