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고려대 ‘이건희 사태’ 학생 토론회
“‘명예박사를 줄 수 있느냐’와 ‘폭력성이 있었느냐’가 본질이 아니다. 외형 위주의 성장 뒤에 대학의 철학이 얼마나 부재한가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 사건입니다.”
‘이건희 사태’ 이후 몸살을 앓고 있는 고려대 학생들이 이번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10일 오후 안암교정 민주광장에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일부 학생들이 2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 입장을 막고 나선 이후, 고려대는 보직교수 사퇴서 제출과 반려, 총장의 사과문 발표, 시위 학생 처벌 검토, 시위 찬반 논쟁 등으로 일주일 넘게 ‘이건희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토론은 온라인에서 감정 싸움을 하지 말고 공개된 장에서 여러 의견을 드러내자는 뜻에서 총학생회가 주최했다. 토론회에 나온 정치학과 석사과정의 박아무개씨는 “철학의 부재”를 사건의 본질로 규정했다. 박씨는 “학교당국의 과잉대응과 보수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단순한 해프닝을 불경스런 행위로 묘사하며 키웠다. 문제의 본질은 학교와 교수들이 특정 기업에게 얼마나 굴욕적인가에 있다”며 “대학은 외부 권력에 종속되지 말아야 하는데, 독재에 저항한 고려대의 자랑스런 전통은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다.
삼성한테서 450억원을 기부받아 ‘백주년기념 삼성관’을 짓고, 총장이 이 회장에게 ‘백배사죄’하는 동시에 학생 징계를 거론하는 학교당국에 대한 성토는 꼬리를 물었다. 정외과 이아무개씨는 “(기업한테서 기부를 받아) 학교가 겉보기에는 좋아졌다지만, 수업이나 강의실의 질이 좋아진 것은 못 느낀다”고 말했다. 시위를 주도한 ‘다함께 고대모임’의 서아무개씨는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 노력을 방해하는 삼성에 반대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징계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일부 언론이 ‘폭력성’을 부풀려 보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컴퓨터교육과 강아무개씨는 “교직원과 운동부가 동원되고, 삼성 직원들이 학생들을 먼저 위협했다”며 “학생들만 4명이 다쳤는데도, 학교 쪽은 학생들에 대해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은 학교당국이 ‘민족 고대’를 벗어난 ‘글로벌 고대’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의 역할과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자는 데로 나아갔다. 불문과 김아무개씨는 “이번 일로 처장단이 사퇴서를 낼 만큼 대학은 기업에 종속됐다”며 “진리 탐구와 지성의 공간이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대학은 취업기관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을 90학번 졸업생이라고 소개한 이는 “이 회장이 명예박사를 따기 위해 400억원을 기부한 게 아니라 삼성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랬을 것이고, 총장 등이 고려대를 망치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며 “대학당국을 이해하자”고 제안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운동권’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나와 난상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했지만, 50여명의 학생들이 의견 발표를 지켜봤을 뿐, 총학생회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총학 없는 평화 고대’ 쪽 학생들은 중립적인 사회자의 진행을 요구하며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사회부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삼성한테서 450억원을 기부받아 ‘백주년기념 삼성관’을 짓고, 총장이 이 회장에게 ‘백배사죄’하는 동시에 학생 징계를 거론하는 학교당국에 대한 성토는 꼬리를 물었다. 정외과 이아무개씨는 “(기업한테서 기부를 받아) 학교가 겉보기에는 좋아졌다지만, 수업이나 강의실의 질이 좋아진 것은 못 느낀다”고 말했다. 시위를 주도한 ‘다함께 고대모임’의 서아무개씨는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 노력을 방해하는 삼성에 반대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징계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일부 언론이 ‘폭력성’을 부풀려 보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컴퓨터교육과 강아무개씨는 “교직원과 운동부가 동원되고, 삼성 직원들이 학생들을 먼저 위협했다”며 “학생들만 4명이 다쳤는데도, 학교 쪽은 학생들에 대해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은 학교당국이 ‘민족 고대’를 벗어난 ‘글로벌 고대’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의 역할과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자는 데로 나아갔다. 불문과 김아무개씨는 “이번 일로 처장단이 사퇴서를 낼 만큼 대학은 기업에 종속됐다”며 “진리 탐구와 지성의 공간이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대학은 취업기관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을 90학번 졸업생이라고 소개한 이는 “이 회장이 명예박사를 따기 위해 400억원을 기부한 게 아니라 삼성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랬을 것이고, 총장 등이 고려대를 망치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며 “대학당국을 이해하자”고 제안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운동권’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나와 난상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했지만, 50여명의 학생들이 의견 발표를 지켜봤을 뿐, 총학생회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총학 없는 평화 고대’ 쪽 학생들은 중립적인 사회자의 진행을 요구하며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사회부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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