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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눔천사…더불어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죠

등록 2009-01-02 14:57

[나눔이 희망이다]
[보은 나눔] 마장동 축산시장 상인 조돈중씨
도움받아 재기 성공…돌려주는 게 도리
욕심?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면 되죠

지난 2003년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까지 뒤흔들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일해온 조돈중(50)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입 쇠고기는 물론 한우도 팔리지 않았다. 문닫는 업체가 속출했고, 어렵게 차린 조씨의 정육점도 기울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말 조씨의 가게에 불이 났다. 한순간에 일터와 생계를 잃은 조씨는 10년 넘게 살아온 임대아파트 관리비와 전기료도 내지 못할 처지가 됐다. 집세가 6개월이나 밀려 퇴거 위기에 몰렸을 때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2005년 초 이웃 주민이 조씨를 아름다운재단의 저소득층 지원 대상자로 추천한 것이다. 당시 조씨는 이 기금에서 240만원을 지원받았다. “당장 한 푼이 급하던 차에 가뭄의 빗줄기였죠. 그 돈으로 일단 한숨 돌리고 나니, 사정도 조금씩 풀리고 일할 맛도 나더라고요.” 그 뒤 조씨는 차츰차츰 일어서, 2년 뒤 다시 마장동 축산시장에 가게를 일으켜 세웠다.

재단의 지원을 받은 지 3년여가 흐른 올 4월 초, 조씨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며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굳이 갚을 의무가 없는 돈이었지만, 조씨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사람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조씨는 채무 변제에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달이 30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자기 시간과 땀을 들여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더 대단하지요. 제가 받은 도움에 비하면 쑥스럽습니다.”

조씨는 요금 체납으로 전기공급이 끊길 처지에 놓인 가정을 위해 자신의 기부금을 써달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 제가 힘들었을 때와 비슷한 처지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할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사장이지만 아직도 고기를 사고 팔러 전국으로 배달하러 다닌다. 새벽 3~4시께 출근해 오후 5시께야 퇴근하는 고된 하루를 보낸다. 요즘도 고기가 잘 팔리지 않아 걱정이지만, 어렵게 시작한 나눔의 결심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조씨의 새해 소망은 뭘까? “아들과 사위 등 온 가족이 함께 정육점 일을 하고 있어요. 힘들지만 먹고사는 데 지장만 없으면 됐지 큰 욕심은 부리지 않으렵니다.”

글·사진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재능 나눔] 콘서트 기부하는 박성일 피디
출연자·스태프 모두 자원봉사자
잘하는 ‘음악’ 나누니 더 즐거워요

지난 11월 중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가수 박화요비·왁스·김동욱, 탤런트 김효진, 아나운서 박나림씨 등이 무대에서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를 합창했다. 공익근무 중이어서 관객석에 앉아있던 가수 이기찬씨도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이때 갑자기 공연장의 천장이 열렸다. 700여명의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무대 위 출연진과 함께 공연 피날레를 만끽했다.

이날 공연의 이름은 ‘후후만세 쇼’. 후원자가 후원자를 만드는 세상이란 뜻이다.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이 마련한 이 공연은 특별한 땀과 노력으로 이뤄졌다. 공연 수익금을 기부하는 일반적인 자선 공연과 달리, 공연의 모든 과정을 후원자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해결했다. 돈이 아닌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기부하는 이른바 ‘재능 나눔’의 한 형태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 박성일(31)씨는 이날 행사를 자기 일처럼 도맡아 이끌었다. 출연자를 섭외하고, 밴드와 무대감독, 음향·조명 담당자 등을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자’들로 그러모았다.

박씨는 지난 2007년 지인의 소개로 “큰 뜻 없이” 월드비전의 후원자가 됐다. 맨 처음 두 명의 외국 어린이를 후원하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미혼인 그에게 ‘2남 3녀’의 후원 자녀들이 생겼다. 수입이 넉넉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2만원으로 사람이 살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눔의 삶’에 푹 빠졌다.

후후만세 공연은 박씨가 올 6월 월드비전 팀장과 대화를 나누다 기획했다. 박씨는 음악적 재능을 나누고 싶어했고, 월드비전 쪽은 새로운 후원자를 발굴하고 북돋울 행사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양쪽은 콘서트 형식의 쇼를 열자는 데 뜻을 모은 뒤,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박씨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쪽”이라며 “잘할 수 있으니 더 즐겁다”고 말했다. 박씨의 무보수 공연에 나선 후원자 30여명은 대부분 박씨를 통해 월드비전 후원자가 된 이들이었다. 이들도 박씨처럼 다달이 정기 후원을 하지만, ‘재능과 능력을 나누자’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었다.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은 “이 사람들은 (나눔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했다. 박씨는 월드비전 후원을 위한 음반 등을 지인들과 함께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글·사진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국제 나눔] 국제결혼한 김찬우·왕리리 부부

죽을 고비 넘기니 ‘숨 쉬는 것도 기쁨’

4년째 월급 쪼개 기부…맘이 뿌듯해요

“리제 워 마?”(나 이해해요?)

“리제, 넝 리제.”(그럼, 이해하고 말고.)

지난 성탄절 아침 김찬우(37)씨는 부인 왕리리(26)에게 서툰 중국말로 한가지 ‘고백’을 했다. 김씨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알릴 기회가 없었다”며 “반대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내가 흔쾌히 이해해 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건설회사 직원인 김씨는 4년째 월급을 쪼개 아름다운재단, 유네스코, 충북 음성 꽃동네 등 예닐곱 곳에 기부를 해오고 있다. 많지 않은 월급에서 7~8%를 매달 떼어낸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부인에게 알린 것이다.

김씨의 ‘나눔 인생’은 4년 전 큰 수술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심장 이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숨 쉬는 것도 기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때부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름다운재단을 시작으로, 유니세프, 적십자회 등에 정기 기부를 시작했고, 수술을 받았던 대학병원 심장혈관센터에도 적은 돈이지만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기부하는 돈이 아깝진 않을까? “외식이나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있어요.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우편물 등으로 알려오는데, 이를 보면 오히려 뿌듯해요.”

김씨의 나눔 활동은 지난 10월 중국인 여성을 부인으로 맞으면서 외국으로 넓어졌다. 그는 이미 결혼식 축의금의 5%를 아름다운재단에 다문화가정 지원기금으로 냈다. 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 등 현지어로 쓰인 도서를 구입하는 데 쓰이는 기금이다. 김씨는 “앞으로 유니세프 같은 국제적 자선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목표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나눔 활동은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신혼인 김씨 부부는 아직 말이 서툴러 서로 길고 복잡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왕씨는 “돈 많은 사람이 자선활동을 하는 것은 평범한 일일지 모르지만, 돈도 많지 않은데 이웃을 돕는 데 적극 나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은근히 남편을 치켜세웠다. 중국에서 유치원 교사였던 왕씨는 한국에서 중국어 교사로 일하는 게 꿈이다. 그는 “나도 한국에서 취업해 돈을 벌게 되면 남편처럼 어려운 사람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말했다.

글 최현준 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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