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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추억이 모락모락…‘소풍’ 갈까요?

등록 2009-01-15 18:22수정 2009-01-15 19:20

카트만두의 한국 밥집 ‘소풍’의 직원 5명이 지난 연말 자신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등장하는 <우리들의 소풍> 책을 받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자나 라마, 퍼시 셰르파, 푸르바 셰르파, 사노마야 셰르파, 김홍성씨, 마야 셰르파.
카트만두의 한국 밥집 ‘소풍’의 직원 5명이 지난 연말 자신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등장하는 <우리들의 소풍> 책을 받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자나 라마, 퍼시 셰르파, 푸르바 셰르파, 사노마야 셰르파, 김홍성씨, 마야 셰르파.
네팔 ‘한국음식 공동체식당’ 김홍성씨
개업뒤 6년째 현지 여성 5명 ‘자율 경영’
네팔인 즐겨찾아…밥집 얘기 책 펴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장 번다한 여행자 거리인 타멜의 뒷골목에는 소박한 한국 밥집이 하나 있다. ‘소풍-Picnic’. 둥그런 앉은뱅이 밥상에 김밥과 도시락, 비빔밥과 라면 같은 ‘정통 한국식 서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 집의 주인은 한국인 작가 김홍성(54)씨. 하지만 2004년부터 6년째 네팔 현지인 여성 종업원 5명이 자율적으로 꾸려가는 공동체 식당이다.

주방장이자 대장은 40대의 씩씩한 아줌마인 사노마야, 셰르파로 주인 김씨와 인연을 맺어 맨 처음 주방장을 맡았던 남편 겔루가 4년 전 서울에 다니러 갔다가 아예 취직을 하는 바람에 대타로 나섰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씨를 가져다 고추농사까지 손수 지어 김치와 고추장을 담가 쓴다. 글을 모르는 마야를 대신해 경리는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나온 서자나가 맡고 있다. 부지런하고 돌아다니길 좋아해 서빙과 장보기를 담당하는 푸르바, 그리고 설거지 담당 퍼시와 부주방장 마야까지 4명은 모두 20대 아가씨들이다.

전직 사진기자이자 시인인 김씨는 일년에 두 차례쯤 히말라야 여행기를 쓰고자 답사 가는 길에 잠깐 소풍에 들러 살펴볼 뿐 식당 운영에는 거의 간여하지 않고 있단다. 각자 경력별로 기본급에다 매달 순수익에서 5%씩을 나눠 가진 뒤 나머지는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명절 때 보너스를 빼고 지금까지 모은 기금은 우리 돈으로 겨우 200만원 남짓, 하지만 네팔의 화폐 가치로는 전 직원의 1년치 급여보다 많다.

“소풍 식구들 대부분은 해발 3500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의 솔루 지역 출신인데, 지금은 집권에 성공한 공산 게릴라의 본거지여서 관광객이나 외부 영향을 덜 탄 곳이죠. 그만큼 순수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저를 ‘삼촌’이라 부르고 따릅니다.”

지난 연말 현지를 다녀온 김씨는 “네팔의 정정이 아직 불안하고 경기도 나빠져 20여개 한국 식당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풍은 적자를 내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사부작사부작’ 노는 사랑방이 됐다”고 신통해했다. 애초 개업 때부터 한국 식당끼리 경쟁을 피하고자 했던 김씨의 바람대로, 소풍은 네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외식집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풍의 변신에는 슬픈 내력이 있다. 트레킹 전문기자로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90년대 초 ‘출가’를 선언하고 오지 순례에 나섰다. 그 수행의 길에서 만난 도반 ‘수자타’(법명)와 부부의 연을 맺은 그는 네팔에 정착하고자 2002년 봄 소풍을 차렸다. 나팔꽃처럼 환한 웃음을 짓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손맛이 소문나면서, 소풍은 2년 만에 북한 손님들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그 무렵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문득 향수병이 일어” 실향민인 노부모가 살고 있는 포천의 산정호수와 카트만두를 오가며 살기로 결단을 내린 부부는 2005년 봄 귀국을 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고 호소하던 아내는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아 2006년 여름 끝내 먼저 “사바세계를 떠나 쌍무지개 뜨는 좋은 곳”으로 가버렸다.


이후 2년 남짓 수자타에 대한 그리움과 순박한 밥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의 소풍>(효형출판 펴냄)으로 묶어낸 그는 지난 연말 소풍 식구들에게 책을 전하고 왔다.

“그들이 원할 때까지는 지금처럼 소풍을 맡겨둘 참입니다.” 그는 혁명 이후 개방과 개발 바람이 불어 사람들의 눈빛이 예전처럼 맑진 않은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김홍성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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