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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부간 강간죄 인정…‘은밀한 폭력’에 경종

등록 2009-01-16 19:17

외국인 아내 흉기 위협…“성적 결정권 침해” 첫 판결
1970년 대법 무죄 판결…여성계 “의미있다” 반겨
실질적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더라도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고종주)는 16일 외국인 아내 ㅂ(25)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로 기소된 ㅇ아무개(42·회사원)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당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무시한 채 폭력의 방법으로 강간을 저지른 것이므로, 피해자와 실질적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더라도 성폭력범죄 처벌법의 특수강간죄를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는 고국과 가족을 떠나 오로지 피고인만 믿고 타국에 왔으며, 언어까지 통하지 않아 힘든 처지에 놓여 있으므로 피고인이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며 “부당한 자기 욕구를 충족하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흉기로 위협한 것은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재도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ㅇ씨는 2006년 8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필리핀 국적의 아내와 결혼했으나, 생활비를 주지 않고 자주 학대해 아내가 한때 가출하기도 했다. ㅇ씨는 지난해 7월 아내에게 성행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부부간 강간은 1970년 대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내린 뒤로 처벌되지 않아 왔다. 다른 여성과 동거 중인 남편이 아내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사건에 대해 1969년 대구지법 경주지원과 대구고법이 강간죄를 인정했으나, 이듬해 대법원은 “남편이 동거녀를 보내고 부부가 새 출발을 하기로 한 만큼 남편에게 정교 청구권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깼다.

서울중앙지법은 2004년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성추행한 남편에게 강제추행죄를 인정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부부간의 관계는 타인이 간섭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범행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엄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1심으로 확정돼 대법원 판단을 구해보지는 못했다.

이 판결을 들은 여성단체들은 ‘부부 사이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함을 분명히 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반겼다.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생활 의무를 이유로 들어 부부 사이의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었다”며 “이번 판결은 부부라도 폭력을 동원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광진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가정폭력추방팀장은 “적지 않은 배우자 성폭력이 그동안 잘 드러나지 못했는데, 이번 판결로 많은 피해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번 판결을 한 고종주 부장판사는 2002년 성전환자의 사회적·심리적 성별을 인정해 국내 최초로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또 지난해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신아무개(28)씨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되자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구해 강간 혐의로 기소하게 하기도 했다.


부산/신동명, 최원형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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