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행정자치위원회의 공직자윤리법개정공청회에 참석한 발제자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외유 동반하면서 관용여권 발급받아…국회 관계자 “오랜 관행”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국회의원은 공무원일까요? 정답은 ‘맞다’입니다. 국가공무원법 제3조 단서의 규정을 보면 공무원의 범위는 1. 대통령 2. 국무총리 3. 국무위원 4. 국회의원 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국회의원의 배우자는 공무원일까요? 물론 ‘아니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선 국회의원의 배우자도 공무원 대우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배우자와 함께 외유를 갈 때 관행적으로 받아온 ‘관용여권’ 때문입니다. 11일 <한겨레>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의 여·야 국회의원 6명이 오는 16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를 방문합니다. 외유를 떠나는 6명의 국회의원 중 한나라당 소속의 김기춘·이명규·이인기 의원이 부인과 함께 합니다. 문제는 이들 부인들이 외교통상부를 통해 관용여권을 발급받았다는 겁니다. 여권법 시행령으론 발급 가능…문제는 ‘의전행사 참여’ 때만
이번에 발급된 여권은 1년짜리 관용여권이라고 합니다. 관용여권은 공무원들이 공무를 위해 해외출장을 갈 때 사용하는 여권입니다. 공무용이란 의미죠. 여권법 시행령을 찾아 봤습니다. 제7조 관용여권의 발급대상자 항에 ‘공무원, 정부투자기관·한국은행 및 한국수출입은행의 임원 또는 집행간부 및 직원으로서 공무로 국외에 여행하는 자와 관계기관이 추천하는 그 배우자·미혼인 직계비속 및 생활능력이 없는 부모’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공무원(국회의원)의 부인에게도 발급이 가능하다는 해석은 됩니다. 그러나 외교부에 문의한 결과 외교부 여권규정에 따르면 국회의원 부인들에겐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의전행사에 참여할 때만 관용여권을 발급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이번에 공식 의전행사가 있어서 관용여권을 발급받은 것일까요? 취재 과정에서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국회 관계자는 “원래 해외방문 일정에 이집트가 있었는데, 이집트에 무비자입국을 위해 관용여권을 발급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자세한 내용은 알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일정은 이집트-이탈리아-프랑스였고, 이집트는 비자가 필요한 만큼 그 절차를 생략하기 위해 관용여권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길 만도 합니다. 관용여권은 정부가 공무용으로 발행하는 여권이어서 일본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비자를 면제해 준다고 합니다. 그 설명대로라면 공식의전이 아닌 무비자 입국을 위해 공무여권을 ‘이용’하려 한 셈이 됩니다. 확인취재 들어가자 부랴부랴 일반여권 권유 부인들과 함께 가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이번 국외방문이 공식 일정이 아닌 사실상의 여행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인기 의원은 “배우자 몫의 경비는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로 하고 가는 것”이라며 “그간의 고생을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처음으로 함께 국외출장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기춘 의원도 “이번 총선 때 내조하느라고 고생했는데, 모처럼 국외 가는 기회에 자기 비용으로 한번 동행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함께 가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부인을 동반하지 않고 가는 것도 부인과의 동반이 필요한 공식행사가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국회 행자위에서는 <한겨레>가 확인취재에 들어가자 부인들에게 관용여권 대신 일반여권으로 외유를 가도록 했습니다. 국회 행자위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공무원이지, 국회의원 부인이 공무원인 것은 아니다”면서 “국회의원 보좌관들에게 관용여권이 아닌 일반여권을 쓰도록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국회에서도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한 셈이죠. 그런데 국회의원 부인이 관용여권으로 여행가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현역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동반하는 부인들에게 관용여권을 발급해 주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며 “일부 국가의 경우 무비자입국이 되는 등의 특혜가 있어서 그렇게 해온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부인과 함께 국외방문에 나서는 것까지 굳이 문제삼을 일은 아닌지 모릅니다. 부인 몫의 비용은 국회의원들이 부담한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더라도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