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사이버 명예훼손 친고죄 예외에 대한 전문가들 의견
노무현 대통령 저격 패러디.
노 대통령의 이마를 저격수가 정조준하는 이 패러디를 만든 대학생 등은 협박 혐의로 지난 2일 불구속 입건됐다. ‘처벌해야 하느냐’는 논란도 있기는 하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사이버 폭력’의 하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경찰이 명예훼손죄가 아닌 협박죄를 적용한 것도 고민의 결과요, 협박죄는 ‘반의사 불벌죄’이기 때문이다. 곧 피해자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하면, 그 뜻을 거슬러서 처벌할 수 없다. 이런 고민에서 드러나듯 현행법상 협박죄와 명예훼손죄 등은 반의사불벌죄며, 모욕죄와 죽은 사람의 명예훼손죄 등은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다. 따라서, 피해 당사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아무래도 수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이버 폭력’을 “가만 놔두면 안된다”는 지적을 무시할 수도 없다.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상당수 사이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때문에 나온 게 사이버 폭력의 반의사 불벌죄 및 친고죄 적용에 예외를 두는 것을 검토하는 ‘사이버폭력특별법’ 제정 논의다. 정부는 지난 10일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이해찬 총리 주재 ‘4대폭력 근절대책 관계장관회의’에서, 사이버 폭력의 정의, 구성요건 등을 규정한 사이버폭력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현행법과 달리 사이버 폭력은 반의사 불벌죄 및 친고죄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인식과 달리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해법’에는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 취재기자가 무작위로 접촉한 전문가들은 ‘사이버폭력특별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법 만능주의’에 대한 지적이다.
전문가들 대부분 사이버폭력 처벌 ‘특별한 기준’에 반대“전파성 크나, 범죄의 성립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닌데…”
|
▲ 초등학교 교사를 사칭한 네티즌이 글을 올린 인터넷 사이트 화면. 교사를 사칭한 한 네티즌의 글은 교사 집단 전체에 대한 씻기 어려운 상처와 불신을 남겼다.
|
|
|
|
|
고려대 하태훈(형법) 교수는 “처벌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법에 지나치게 의존해 처벌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형사정책을 펴려는 게 아닌가 싶다”며 “사이버폭력이 반의사 불벌죄나 친고죄가 갖는 피해자 보호의 취지를 무시해도 되는 불법행위인지 따져봐야 하고, 온라인은 파급성이 있기는 하지만, 쌍방향이어서 반박자료를 올리는 등을 통해 진위가 곧바로 드러난다”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사이버범죄연구실 홍승희 연구원도 “아직까지 인터넷 문화 등이 초기단계인데 다른 대책을 고려하지 않고, 처벌쪽으로만 가는 것은 시기상조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적 처벌이 가장 짧은 시간에 효과적이겠지만, 기본권 제한 등 형사처벌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강동범(형법) 교수는 “주먹을 휘두르는 오프라인의 폭력과 달리 사이버 폭력의 개념 등이 모호하다”며 “사이버상에서 전파성이 크기는 하지만, 범죄의 성립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닌데 모욕죄 등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해야 되는지 의문이다”는 의견을 냈다. 강 교수는 “피해자가 처벌보다는 배상을 원할 때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두는 게 유리한데도, 이를 없애면 피해자에게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법을 만들게 아니라, 기존 법 활용해야”
연세대 전지연(형법) 교수는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게 아니라, 기존 법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전 교수는 “피해자가 특정되면 지금도 처벌할 수 있는만큼 사이버 폭력의 개념 정의 등이 어려운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 게 아니라, 기존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없애거나 반복적 행위에 대한 모욕죄 처벌조항을 두면 된다”며 “새로운 규제를 함으로써 인터넷이 갖는 쌍방향성 등이 사라지고 통제의 매체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법적 처벌보다는 자율통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대 서이종(정보사회학) 교수는 “특별법까지 동원해서 법적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법적 규제를 최소화하면서 누리꾼의 자정노력이나 시민단체 등의 문화적 운동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본인의 의도하지 않게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통해 확산된 문제를 개인에게만 책임지우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다양한 사회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을 ‘문제니까 처벌해야 한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완 “사이버 폭력은 현실적 피해 큰 만큼 더 중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경희대 정완(경제법) 교수는 ‘사이버 폭력’에 대한 처벌에 적극적이다. 정 교수는 “사이버상에서 폭력을 당하면 광범위하게 퍼지는 등 현실적인 피해가 큰 만큼 가벌성도 더 크다”며 “막연하게 사이버 공간까지 처벌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은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며, 피해가 큰데도 근거없이 관대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고 밝혔다.
자율 규제가 대안이라는 지적에도 정 교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 교수는 “자율 규제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자유규제가 안되니까 법률적 기준을 만들어서 처벌하려는 것 아니냐”며 “근거가 있어야 규제를 할 수 있으므로 법적조처를 만들어놓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는 쪽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경찰 사이버수사대 “예외규정 둬야 수사 신속해져”
경찰 사이버수사 관계자도 “반의사 불벌죄 및 친고죄 등은 피해자의 뜻을 알 수 없다보니, 처벌의사를 확인하는 고소장을 먼저 받고 수사하는 경향이 있다”며 “예외 규정을 두면 아무래도 수사를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이버 폭력을 당하면 피해가 심각해 생활자체가 황폐화되고 사람이 완전히 망가지기도 한다”며 “불특정 다수가 접속하니까 전파가능성이 크고 피해도 크다”고 사이버 폭력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정통부 “아직 확정된 것 아니니 연구 토론 거쳐 공감대 형성해야”
한편,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사이버폭력특별법’ 제정과 반의사 불벌죄 및 친고죄 예외 적용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열린 마음으로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인지 논의하자는 것이다”며 “다음주 토론회, 8월까지 연구용역 검토 등을 거쳐 내년 2월까지 기본 안을 만들 것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이버 폭력이 무엇인지, 피해자의 범위, 오프라인과의 형평성, 표현의 자유 훼손 여부까지 모두 제도적으로 검토하고 공론화를 거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