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길의 행복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한겨레>가 창간된 지난 88년 이후 17년만 되돌아봐도, 각 분야에서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최근 십수년 동안 급속도로 이뤄진 정보화, 개인주의화, 국제화가 한국인의 생활 양식을 크게 바꿔놓은 것이다. 특히 97년 외환위기는 이런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 것으로 분석된다.
손전화 가입자수 3700만명…17년새 1800배나 뛰어
출산율 떨어지고 이혼늘어 '3대 가족' 점점 사라져
노동 주당 45.4시간으로 감소…투표 등 사회참여는 부진
■ 정보화가 생활 양식을 결정 = 정보통신부의 통계를 보면, 2005년 2월 말 현재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3692만여명에 이른다. 보급률이 76%로 국민 4명 가운데 3명 꼴로 이동전화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88년만해도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2만353명에 불과했다. 당시 무전기 크기의 시커먼 이동전화를 가지고 다니면 사복 형사나 기관원으로 오해받기 쉬었다. 그런데 불과 17년만에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무려 1800배 증가한 것이다.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 꼭 필요한 것 하나’를 묻는 우스개 질문에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제 이동전화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인터넷을 통해 신문을 보거나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쇼핑을 하는 일도 이제 일상화됐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조사를 보면, 15살 이상 국민 가운데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사람의 비율이 2000년 13.5%에서 2004년 25.8%로 두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특히 20대 젊은층은 절반에 가까운 49.6%가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고 있다. 또 인터넷뱅킹의 경우 이용자 수가 2000년 409만명에서 2004년 2427만명으로 불과 4년 사이 5배, 이용 건수는 3669만건에서 9억2808건으로 24배 증가했다.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최근 6개월 사이 인터넷으로 상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45.3% 됐다. 이제 정보기술(IT)를 떼어놓고는 한국인의 생활 양식을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전통적 형태의 가족은 해체 = 최근 십수년 동안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매우 활발해졌다. 교육부의 통계를 보면, 여성 대졸자(4년제) 취업률이 88년 31.3%에서 2004년 53.3%로 크게 높아졌다. 반면 남성은 같은 기간 63.4%에서 59.3%로 낮아졌다. 단순히 양적으로만 커진 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치러진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의 수석을 여성이 모두 차지했다. 또 변리사,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등 8개 국가자격시험의 수석도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결혼을 늦게하거나 아예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통계청의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88년 38만9천건이었던 한해 결혼 건수가 2004년엔 31만1천건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여기에 육아와 자녀 교육에 대한 부담까지 커지면서 출산율은 같은 기간 1.56명에서 1.19명으로 줄었다. 반면 이혼은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어 같은 기간 4만2천건 13만9천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러다보니 결혼한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3대가 함께 사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 형태는 주위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85년 6.9% → 2004년 16.9%)와 2인 가구(85년 12.3% → 2004년 20.7%)의 비중은 크게 늘어난 반면, 5인 이상 가구(85년 39.0% → 2004년 13.8%)은 급격히 감소했다.
■ 여가 시간은 늘었는데 사회적 참여는 부족 = 노동부 통계를 보면, 88년 51.1시간였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이 2004년 45.4시간으로 5.7시간 줄었다.
또 그만큼 늘어난 여가시간은 건강을 위해 많이 쓰이고 있다. 통계청의 ‘사회통계 조사’를 보면, 15살 이상 국민 가운데 70.4%가 건강 관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9년 29.7%와 견줘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주된 건강 관리 방법으로는 운동(38.2%)이 가장 많았고 다음은 충부난 휴식·수면(21.9%)과 식사 조절(18.0%), 보약·영양제(4.8%), 목욕·사우나(4.2%)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의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87년 69.8살에서 02년 77.0살로 늘어났다. 특히 여성은 남성(73.4살)보다 7살 이상 많은 80.4살로, 80살을 넘어섰다.
여가 활용 방법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해외 여행이 늘었다는 점이다. 최근 1년 동안 해외 여향을 한 사람의 비율이 93년 3.9%에서 2004년엔 10.2%로 3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여유 시간이 늘어났지만, 사회 참여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살 이상 가운데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비율이 2003년 14.6%에 불과했다. 특히 학생인 15~19살일 때는 자원봉사 참여율이 52.4%나 됐으나, 20대 10.3%, 30대 11.6%, 40대 14.2%, 50대 12.2% 등 나머지 연령층은 10명 가운데 1명 정도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또 선거 투표율도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88년 실시된 4·24 총선의 투표율은 75.8%였으나 지난해 치뤄진 4·15일 총선은 60.6%로 떨어졌다. 대통령 선거도 87년의 13대 대선은 투표율이 89.2%였으나 2002년 17대 대선에선 72.6%로 낮아졌다. 안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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