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관련 없는 국정원 동석 의문
초기부터 알았거나 관여 가능성
방러전 밀어붙여 연관성 의혹 증폭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유전사업의 청와대 보고를 지시하고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을 만나 직접 지원을 요청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이 사업이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마침내 12일에는 김 전 차관이 은행권에 대출 청탁을 하는 자리에 국가정보원 간부까지 합석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동안의 수사상황을 보면, 검찰은 김 전 차관 등이 정·관계 ‘실세’들과 공모해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맞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에 청와대나 여권 실세가 어느 선까지 참여했느냐로 좁혀지고 있다. ◇ 대출청탁 자리에 국정원이 왜?=김 전 차관이 황영기 행장 등 우리은행 고위 임원들을 만나 대출 협조를 요청했다는 자리에 국정원 간부가 참석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전적으로 김 차관의 주도로만 이뤄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적어도 국정원이 유전사업 초기부터 유전사업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 전 차관이 협조 요청을 한 시점은 철도공사의 유전사업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해 7월22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유전사업과 관련한 대출 협조를 요청했다면, 이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동안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철도공사의 유전사업이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한 차례 제출한 사실만 알려져 있었다. 김 전 차관 쪽과 우리은행, 국정원 쪽은 이 자리에서의 대출 요청 자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은행 쪽도 “7월22일 황 행장이 신임인사차 철도청 간부들과 오찬을 했으며, 평소 알고 지내던 국정원 간부에게 이 자리에 동석을 권유해 함께 만난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대출 얘기는 없었고, 철도청 쪽에서 대출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은 6일 뒤인 7월28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철도청장-은행장-국정원 간부’의 조합은 아무래도 어색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사업지원이 있었다는 정황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 정부 차원의 지원 있었나?=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사고 있는 정부 기관은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비롯해 산업자원부, 외교부(주러시아대사관), 국정원으로 광범위하다.
청와대 쪽은 관련 내용들에 대한 보고를 누락하거나 늑장보고를 한 사실들도 드러났다. 현재까지 거론되는 청와대 최고위 간부인 박남춘 인사제도비서관은 김 전 차관과의 친분관계가 새롭게 확인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이희범 장관이 신광순 전 철도공사 사장이나 김 전 차관에게 지원 요청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주러시아 대사관도 지난해 9월 노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코리아크루드오일, 철도공사, 러시아 회사와 3자 모임을 준비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모양으로만 보면, 여권 실세가 주도해 범정부적으로 사업이 진행된 것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검찰은 특히 김 전 차관이나 왕영용씨 등 사건 관련자들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무리하게 사업을 급진전시킨 것으로 볼 때, 실제 이 사업이 방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의 누군가가 유전사업을 의미가 있는 사업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그 ‘누군가’에 대해서는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극구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것은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정치권 외압에 대한 수사가 김 전 차관과 가까운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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