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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읽기쉬운 ‘한겨레체’ 첫선

등록 2005-05-13 11:07수정 2005-05-13 11:07

네모틀 벗고 글씨 키워…한글 장점도 살려

5월15일은 제608돌 세종임금 탄신일이다. <한겨레> 창간 기념일(17돌)이기도 하다. 스승의 날에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날도 겹쳐 더욱 뜻깊은 날이다.

한겨레도 이날 여러가지 새 모습을 선보였든데, 새 글꼴이 그 하나다. 이를 ‘한겨레 결체’(줄여서 한결체)라고 이름붙였다.

한결체는 우리나라 신문 가운데 처음으로 ‘네모틀을 벗어난’ 글꼴이다. 기존 글꼴은 모두 ‘일정한 크기의 네모꼴’에 꿰맞춰 글자를 늘리거나 줄인다. 예컨대 ‘가’와 ‘강’이라는 두 글자가 그렇고, 심지어 ‘바’와 ‘빨’마저 같은 크기다.

한결체는 이런 네모틀을 벗어난 글자로서 한글의 조형성을 그대로 살렸다. 사실 세종임금이 처음 한글을 만들 때, 한글은 가로·세로가 각각 다양한 크기를 가진 조형적 문자였다. 한결체는 이 원리를 좇아 글자 크기가 본디 생긴 대로 자유롭기에, 각 낱말이 저마다 표정을 갖는다.

한결체는 실용적 측면에서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오래 읽어도 다른 글꼴에 비해 눈의 피로가 훨씬 덜하다.

한결체 개발의 실무책임자인 홍동원 글씨미디어 실장은 “예컨대 영어 낱말 ‘interesting’은 일일이 알파벳을 읽어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들쭉날쭉한 낱말 자체의 이미지로 곧바로 전달돼 쉽게 파악된다”며 “한결체를 처음 보면 낯설겠지만 두번째 볼 때부터 곧바로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런 탈네모 글꼴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이미 널리 쓰이고, 잡지에도 자주 등장한다. 가장 보수적인 매체인 신문만 채택하지 않은 것이다.

한겨레는 한결체를 지면에 적용하면서 넓고 시원하게 썼다. 기존 글꼴이 3.52㎜(세로 높이)였으나 새 지면은 3.62㎜로 커졌다. 자간과 행간도 넓어져, 한 면 기준 원고량이 22장(200자 기준)으로 예전보다 2~2.5장 줄었다. 좁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던 지면이 트인 느낌으로 바뀐 것이다.최인호 안창현 기자 goljal@hani.co.kr



전문가가 본 한겨레 새 서체
‘모아쓰기’서 ‘풀어쓰기’로…글꼴은 진화한다

글을 쓰지 않고 치는 시대, 바탕글자나 그림을 그려 컴퓨터에 심어놓고 즉석에서 불러다 적당한 모양·크기로 바꿔 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글을 통해 전산기를 활용할 여지는 많다. 모아쓰기에서 풀어쓰기로 가는 길도 그 한 방편이라는 이론이 나온 지도 오래되었다. 우선 모아쓰기 글씨꼴의 내림을 한번 짚어 보자.

한글 인쇄체 활자꼴의 첫 작품은 <훈민정음>, <석보상절>, <동국정운>을 박은 글꼴로서, 자로 그린 듯한 기하학적인 글꼴이다. 수백년 대표적인 필기도구가 붓이었던 까닭에 이 붓으로 쓴 자연스런 글씨체가 ‘궁체’로 발전한다. ‘궁체’는 지금까지 목판이나 활판 글씨체의 본이 되었는데, 필기도구가 연필이나 철필로 바뀌면서도 글씨꼴의 본보기로 자리잡는다.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타자기로 친 글씨체가 나오고, 이어서 활자 아닌 사진식자 시대를 지나며,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산기로 찍은 글씨체가 나온다. 타자기 글씨는 네모 틀을 깨뜨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 공병우의 전산기 빨래꼴 글씨체로 발전한다.

모아쓰기는 글꼴을 네모라는 공간으로 한정한다. 따라서 글자를 디자인할 여지를 극도로 가두고 있는 셈이다. 결국 받침이 있는 글자와 받침이 없는 글자의 길이 차이, 옆으로 글자가 하나인 것과 둘이나 셋으로 된 것의 너비 차이를 살린 글이 최선일 정도로 글꼴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진단한다.



한편으로 풀어쓰기는 어떤 장점이 있는가?

한글은 닿소리 열넉 자(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홀소리 열 자(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합쳐 스물넉 자가 기본이다. 여기에 된소리 다섯(ㄲ, ㄸ, ㅃ, ㅆ, ㅉ)과 겹홀소리 열한 자(ㅐ, ㅒ, ㅔ, ㅖ, ㅘ, ㅙ, ㅚ, ㅝ, ㅞ, ㅟ, ㅢ)를 더하면 모두 마흔 자가 된다.

이 정도 수효라면 로마자 이상으로 갖가지 글꼴을 쉽게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합리성을 갖춘다. 김정수 교수(한양대)는 풀어쓰기의 쓸모를 △언어의식 계발 △우리말의 자율적인 발달 △전산기 활용 △우리말의 정밀한 연구 △글씨체의 다채로운 개발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모아쓰기에서는 초·중·종성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는 글자가 일만일천일백일흔두자 이상으로서 기본적으로 바탕글자만 해도 1만1172자를 디자인해야 하며, 이것의 돋움체(고딕)가 있어야 하고, 크기 따라 열댓벌은 돼야 하며, 꼴을 달리한 서체 네댓벌을 갖춘다면 십만 자가 훌쩍 넘어선다. 헛된 수고가 너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직 이론에 그치는 것은 모아쓰기 글꼴에 우리 눈을 한사코 붙들어 매고 있는 까닭이다. 최인호 기자


글꼴디자인 전문가 한재준 교수 인터뷰
“네모 울타리 벗어나니 훨씬 자연스러워요”

<한겨레>에서 창간 17돌을 맞아 새로운 본문·제목 글씨체를 장만했다. 이름하여 ‘한겨레체’(한겨레결체·한겨레돌체)인데, 완결된 상태가 아닌 채로나마 창간 기념호부터 선보이게 되었다. 한글 글꼴 디자인 전문가로서 1989년에 이미 세벌식 ‘공한체’(공병우+한재준) 글씨꼴을 개발한 바 있는 한재준 교수(서울여대 미술대 시각디자인과)한테 새로 개발한 한겨레 글씨체와 우리 한글꼴 디자인의 흐름과 현실, 나아갈 바를 들어본다.



-아직 완결된 상태는 아닙니다만, 시험 인쇄된 한겨레체를 보신 느낌을 솔직히 말씀하신다면?

=첫인상이 좋습니다. 한겨레가 또 앞장서는구나! 곧, 신문이라는 인쇄매체의 보수성을 딛고 한겨레가 처음 이런 활자꼴을 받아들였다는 점은 역시 이 분야에서 혁신 의지가 센 것을 느끼게 합니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한글전용과 가로짜기를 제일 먼저 실천해 다른 신문들이 십여년 사이에 다 따르게 하였고, 이제 새 글씨체마저 장만했으니 셋을 두루 갖췄다고나 할까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사실 한겨레신문사 안에서는 새 글씨꼴에 대한 거부감이 무척 드센 편입니다. 우선 허전하고 엉성한 느낌을 주는데다 전체적으로 기존의 가지런함에서 벗어나 헝클어져 보이니까요. 더구나 본문체를 제목용으로 확대해 보면 더 흐트러져 보입니다. 전문가 눈으로 이 글씨체의 특징을 한번 짚어 주시지요.

=우선 네모에 가두었던 글꼴의 네모 울타리를 한쪽이나마 터 준 데서 큰 변화를 찾을 수 있겠군요. 그래서 아래가 좀 들쭉날쭉한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보기엔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조형의 완성도나 변형 서체(가족 활자꼴)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다듬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신문을 제외한 잡지나 단행본, 휴대전화, 컴퓨터 등에서는 이보다 훨씬 나아간 글꼴이 선보였고, 실제로 많이 쓰이고 있으므로 보는 이들도 곧 익숙해질 것으로 봅니다.

-전문가가 보기엔 자연스러운데, 일반인들한테는 왜 낯설어 보일까요?

=네모에 갇힌 글에 눈이 익은 탓이지요.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눈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장의 ‘눈’을 기준하면 글자꼴의 과학적 변화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길이, 옆으로 겹친 것과 안 겹친 글자의 폭이 다른 것 또한 자명한 것을 살린 것에 불과한데도 낯설어합니다. 제가 보기에, 기존 신문들의 글꼴이 50대 중후반에 익은 체라면 한겨레체는 30대에서 40대 초반으로 내려온 글씨체로 보입니다.

앞으로도 글씨꼴 역시 좋은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한겨레체도 최소한의 과학성은 갖춘 셈이지만 통용성을 얻어 오래 살아남아 발전할지는 앞으로 하기에 달렸습니다. 최소 5년 이상은 깊은 관심을 두고 계속 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한겨레만의 독특한 지향성과 의지를 담아야 할 것입니다. 활자꼴에서 한겨레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게 곧 성공일 터입니다. 한글 글자꼴의 발전은 물론이고요.

휴대전화·컴퓨터에선 훨씬 앞서가
30~40대 눈높이…곧 익숙해질것
한겨레 지향성 담아 완성도 높여가야

-한글과 디자인의 관계를 좀 짚어 주시지요.

=저는 우리나라 시각문화의 핵심은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세나 지형이 자연적인 시각물이라면, 인쇄물은 물론 거리의 간판, 옷, 각종 공산품에서도 규칙과 질서를 갖추고 체계적인 미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글자입니다. 우수한 글자가 한글이라고 말하면서도 시각문화의 고갱이이자 출발점인 한글꼴의 발전에는 투자를 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예컨대 한글 서체를 한 벌 제대로 완성하려면 최소 5년은 잡아야 하고, 강·약·중간약의 음계와 조화를 갖추려면 수십억은 들여야 하는데, 관계 당국은 관심이 적고, 민간에서는 그럴 만한 실력을 갖춘 데가 없는 실정입니다. 한겨레에서 의지를 가지고 한글 활자꼴의 발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깨우는 기사를 많이 써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글자 상징들과 관련한 한글 디자인의 가능성은?

=최근에는 사내 공문서나 보고서 작성을 포함한 인쇄매체, 환경매체, 영상매체 전체에 활용할 수 있는 통합적인 활자꼴 개발과 운용이라는 타이포그래픽 디자인 체계 차원의 시도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들은 ‘이미지 통합’(CI) 개념에서 한 단계 나아간 전략으로서, 특히 전용 활자꼴의 적절한 개발과 운용은 다양한 상대(사람-사람, 사람-기계, 기계-기계 등) 사이의 원활한 소통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이나 단체의 지적인 매력 형성과 유지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 됩니다. 겉치레 위주의 이미지 통합 단계에서 내실을 다지는 발전적 단계의 글짜꼴 디자인으로 가고 있습니다.

-글자생활 기계화 시대에 걸맞은 한글 글꼴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기계화, 전산화 시대라고 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합니다. 손으로 쓰는 원리와 기계로 표현되는 체계가 서로 맞지 않고, 글자의 입·출력 체계가 합리적으로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글꼴도 계속해서 진화하는 대상입니다. 그동안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있었으나,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에 비하면, 지원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관련 부처의 바른 인식과 함께,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절실합니다.

-근황이나 알릴 말씀이 있다면?

=저는 사대주의가 아니라 좋은 우리 디자인이 부족해서 서양 것이 유행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멋있고 좋아 보이는 디자인을 하면 이는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출발점이 한글 디자인이라고 봅니다. 그 방법을 여러 가지로 달리하여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5월20일부터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가 주최하여 신촌 아트레온에서 한글 티셔츠 전시회를 여는 것도 그런 방책의 하나입니다. 한겨레에서도 철학과 정체성이 반영된 글꼴로 대중성을 얻어가는 노력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대담 최인호 기자 golj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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