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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립운동가 호적에 ‘다이쇼·쇼와’ 일제때 연호

등록 2005-05-13 14:59수정 2005-05-13 14:59

독립운동가 임현주의 제적등본. 노란 표시한 부분이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등 일본 연호이다. 임성식씨 제공.
독립운동가 임현주의 제적등본. 노란 표시한 부분이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등 일본 연호이다. 임성식씨 제공.


[논란]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 “고쳐야”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택시기사 임성식(54·운수업)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을사늑약(을사조약) 반대운동을 벌이다 돌아가신 증조부 임현주의 제적증명서(살아있는 이들의 호적등본에 해당·△관련사진)를 떼보았더니 “다이쇼(大正) 5년” “쇼와(昭和) 8년” 등 일본 연호가 튀어나온 것이다. 임씨는 “일제에 항거하고 고초를 겪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록물이 일제 연호로 기록된 것을 보면서 분개했다”고 말했다.

임씨의 주장은 해방된 지 몇 십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국가의 공식 문서에 일제 연호가 남아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제 잔재 청산을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기록물의 연대 표기도 바꿨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일제시대가 역사의 한 부분이고 그 흔적을 없애고 싶어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기록을 수정한다고 해도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남겨두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또 하나는 제적증명서의 기록을 다 수정하려들면 그 시대를 살다간 수천만 명의 기록을 바꿔야 하는데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온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다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보지 않고”, 호적·제적 기록물을 맡고 있는 법무부 쪽은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기록물에 일제 연호가 등장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해방 이후 거기에 두 줄을 긋고 서기 연도를 기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얘기는 설득력 있게 들린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으로 인한 투옥 경력이 ‘전과’로 기록돼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던 사례에 비춰보면, 그리고 최근 친일인사 후손들이 조상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종이 기록물이 디지털 정보로 바뀌는 전산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수정되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면 조금 더 생각해볼 대목이 있는 것 같다.

전자정부 추진 과정에서 국민들의 호적은 이미 전산화 작업이 끝난 상태다. 새로 입력을 해넣어 일제 시대를 살았더라도 그 시대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거처럼 한자 일색도 아니다. 하지만 고인들의 제적 기록은 다르다. 현재 제적제적 기록 전산화 작업은 진행중인데, 호적 기록처럼 새로 입력하는 게 아니라 스캔(그림·사진 따위를 전자 부호로 변환해 컴퓨터 파일로 저장)하기 때문에 예전 문서 형태 그대로 남게 된다. ‘다이쇼’ ‘쇼와’도 그대로 옮겨지는 것이다. 법무부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새로 입력하기에는 양이 너무 방대하고 제적 기록 한자 중 해독이 불가능한 것도 있어 스캔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해 정부는 각종 기념 행사를 열 예정이다.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 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5월2일부터 6월말까지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시민 제안 공모를 받고 있다. △문화재·건축·조형물 등 유형문화잔재 △언어·전문용어·풍속 등 생활문화잔재 △지명·의례·서식 등 제도와 의식잔재 △학교의레 등 교육잔재 △음악·미술·공연 등 문화예술잔재 △신문·방송·영화·게임 등 문화산업잔재 등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일제 강점 아래 강제로 변질, 토착화됐거나 일제강점시 자연적으로 유입됐으나 우리의 전통가치와 어긋나는 일제 잔재’를 광범위하게 찾아내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수천만 명의 제적 기록을 다 어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일제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거나 숨져간 이들의 기록에서만이라도 일제 잔재를 지울 수는 없을까. 수많은 기념 행사에 비해 그 의미가 뒤떨어지지 않고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제적 기록이 방대해 스캔하는 게 불가피하겠지만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에서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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