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2005년 5월 16일 한겨레신문 75면
한겨레 주주들은 _ 창간주주독자 오덕호씨
늦은 봄 평창강 물 위로는 분홍빛 꽃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건너편 산자락엔 한 무리의 철쭉들이 흐드러져 있다. 신록 빛깔의 강물 위론 봄 햇살이 눈부시다.
지난 2일 평창강가에서 <한겨레> 창간 주주독자인 오덕호(53)씨를 만났다. 평창읍 도돈리 261 평창강가의 황토방 2층 슬라브 건물이 오씨의 집이다. 평창에서 7㎞ 남짓, 차로 10분 거리다. 오씨를 찾아간 것은 그가 지난 3월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겨레> 주주총회에서 보인 기행(?)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한겨레>의 경영 부진을 거세게 질타해 임·직원을 몹시 당황케 했다. 그러면서 오씨는 즉석에서 50만원의 주식 증자대금을 쾌척했다. 적지않은 돈을 주식대금으로 선뜻 내놓은 이유가 우선 궁금했다.
“경영을 잘 해달라는 뜻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한겨레 만큼은 좀 달라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주주독자들이 신문 한 부 더 보고, 모임 한 번 더 하는 게 어려움에 빠진 한겨레를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한겨레가 달라질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주총에서의 오씨 독설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안다. 지난해 주총에서는 두 자리수의 적자가 난 것을 두고 “아예 폭싹 망하든지, 아니면 최선을 다해달라”고 <한겨레>에 직격탄을 날렸다. 올해 주총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주가 6만명인데 그 중 몇 퍼센트가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지 데이터를 뽑아봤느냐” “한겨레 직원들은 소극적이고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 무슨 전화를 해도 ‘담당이 없다’ ‘시간이 지났다’며 책임있게 답하는 사람이 없다” “한겨레 문화센터는 문화기행 한다며 비싼 돈 받아놓고 그렇게 성의없이 준비해도 되나” 등등이 이번 주총에서 그가 쏟아놓은 말들이다. 오씨가 <한겨레>와 인연을 맺은 것은 87년 6월항쟁 즈음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 산업부의 야학에 다니면서부터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오씨는 “배움에 목말라” 36살의 나이에 막내 동생뻘 노동자들과 함께 밤을 밝히며 공부를 했다. 낮에는 한의원에서 운전 일 등을 하며 지냈다. 당시 교회에서 주최한 시국강연회에 함석헌 선생과 함께 송건호 선생이 왔고, “새로운 시대에 정론직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호주머니를 털어 주식 10부를 샀다. 그 이후 주총에만 7~8번 참석하며 단골 ‘쓴소리’꾼이 됐다. 주총 단골 ‘쓴소리꾼’ 50만원 증자금 선뜻
“한겨레 가족모아 농사짓고 닭치며 공동체 만들고 싶소 서울에서 승용차로 3~4시간 거리인 오씨 집에는 그날 아침치 <한겨레>가 놓여 있었다. 오씨는 <한겨레>를 낮 12시쯤 받아본다. 우체국 우편을 통해 배달되는 탓에 집배원이 그날 아침 신문을 한 낮이 되어야 가지고 오는 것이다. 겨울에는 집배원에게 못할 짓이어서 <한겨레> 구독을 잠시 중단한다. 대신 주간지인 <한겨레 21>을 겨울 동안 본다. ‘제2 창간’ 기치를 내건 <한겨레>에 독자로서 바라는 것도 많다.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환골탈태 한번 더 하세요. 왜 결정을 미루거나, 타성에 젖어 있습니까? 정론직필이 아닌 다른 데 쓸데없이 눈치보지 말고 밀어붙이세요.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문다운 신문이 없을 때 해직기자들이 죽을 각오로 새 신문을 만들었던 초심으로 돌아가세요” 오씨는 인터뷰 말미에 뜻밖의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지난 17년여 동안 “서울이 싫으면 와서 살려고” 준비해 놓은 자신의 평창강가 집에 함께 지낼 한겨레 식구를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평창강가에 자리한 3천여평의 오씨 땅에는 대지 300평, 건물 50평의 2층 슬라브 건물이 지어져 있고, 하우스 100평에 스프링쿨러 시설도 돼있다. 동물을 키우는 축사도 마련돼 있다. 예전에는 큰 사슴의 일종인 ‘엘크’ 50마리를 키우기도 했다. 요즘엔 혼자서 힘에 부쳐 잠시 접었다. “한겨레 주주인 것만 확인되면 돈을 받지 않고 이 땅과 집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10년 이상 사용승낙서를 공증해서 보장하겠습니다. 도시생활에 지치고 힘든 한겨레 식구들이 이 곳에 와서 닭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며 부담없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평창/글·사진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경영을 잘 해달라는 뜻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한겨레 만큼은 좀 달라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주주독자들이 신문 한 부 더 보고, 모임 한 번 더 하는 게 어려움에 빠진 한겨레를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한겨레가 달라질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주총에서의 오씨 독설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안다. 지난해 주총에서는 두 자리수의 적자가 난 것을 두고 “아예 폭싹 망하든지, 아니면 최선을 다해달라”고 <한겨레>에 직격탄을 날렸다. 올해 주총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주가 6만명인데 그 중 몇 퍼센트가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지 데이터를 뽑아봤느냐” “한겨레 직원들은 소극적이고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 무슨 전화를 해도 ‘담당이 없다’ ‘시간이 지났다’며 책임있게 답하는 사람이 없다” “한겨레 문화센터는 문화기행 한다며 비싼 돈 받아놓고 그렇게 성의없이 준비해도 되나” 등등이 이번 주총에서 그가 쏟아놓은 말들이다. 오씨가 <한겨레>와 인연을 맺은 것은 87년 6월항쟁 즈음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 산업부의 야학에 다니면서부터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오씨는 “배움에 목말라” 36살의 나이에 막내 동생뻘 노동자들과 함께 밤을 밝히며 공부를 했다. 낮에는 한의원에서 운전 일 등을 하며 지냈다. 당시 교회에서 주최한 시국강연회에 함석헌 선생과 함께 송건호 선생이 왔고, “새로운 시대에 정론직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호주머니를 털어 주식 10부를 샀다. 그 이후 주총에만 7~8번 참석하며 단골 ‘쓴소리’꾼이 됐다. 주총 단골 ‘쓴소리꾼’ 50만원 증자금 선뜻
“한겨레 가족모아 농사짓고 닭치며 공동체 만들고 싶소 서울에서 승용차로 3~4시간 거리인 오씨 집에는 그날 아침치 <한겨레>가 놓여 있었다. 오씨는 <한겨레>를 낮 12시쯤 받아본다. 우체국 우편을 통해 배달되는 탓에 집배원이 그날 아침 신문을 한 낮이 되어야 가지고 오는 것이다. 겨울에는 집배원에게 못할 짓이어서 <한겨레> 구독을 잠시 중단한다. 대신 주간지인 <한겨레 21>을 겨울 동안 본다. ‘제2 창간’ 기치를 내건 <한겨레>에 독자로서 바라는 것도 많다.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환골탈태 한번 더 하세요. 왜 결정을 미루거나, 타성에 젖어 있습니까? 정론직필이 아닌 다른 데 쓸데없이 눈치보지 말고 밀어붙이세요.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도록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문다운 신문이 없을 때 해직기자들이 죽을 각오로 새 신문을 만들었던 초심으로 돌아가세요” 오씨는 인터뷰 말미에 뜻밖의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지난 17년여 동안 “서울이 싫으면 와서 살려고” 준비해 놓은 자신의 평창강가 집에 함께 지낼 한겨레 식구를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평창강가에 자리한 3천여평의 오씨 땅에는 대지 300평, 건물 50평의 2층 슬라브 건물이 지어져 있고, 하우스 100평에 스프링쿨러 시설도 돼있다. 동물을 키우는 축사도 마련돼 있다. 예전에는 큰 사슴의 일종인 ‘엘크’ 50마리를 키우기도 했다. 요즘엔 혼자서 힘에 부쳐 잠시 접었다. “한겨레 주주인 것만 확인되면 돈을 받지 않고 이 땅과 집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10년 이상 사용승낙서를 공증해서 보장하겠습니다. 도시생활에 지치고 힘든 한겨레 식구들이 이 곳에 와서 닭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며 부담없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평창/글·사진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 국민 6만1472명이 주인 _ 우리사주조합 30.26%로 최대주주
보통 한겨레신문사의 주인을 ‘국민’ 또는 ‘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법상으로도 한겨레의 주인은 아주 많다. 4월말 기준으로 한겨레신문사의 주주는 6만1472명이며, 이들이 622만7591주, 311억3795만5천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4808만명(2004년)인 한국인 중에서, 1천명 가운데 1.3명이 한겨레 주주라는 이야기다.
한겨레 주주는 1987년 12월15일 주식회사 설립 당시 7천여명이었다가 창간기금 50억원 모금 완료 시점에는 2만7223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1988년 10월부터 1989년 6월까지 계속된 발전기금 모금과정에서 주주와 주식금액이 크게 늘어났다.
현재 한겨레의 최대 주주는 우리사주조합이다. 2005년 4월말 기준으로 447명의 조합원으로 이루진 우리사주조합은 188만4724주, 94억2362만원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주식의 30.26%에 이르는 것이다.
애초 주식 보유 비중이 3~4% 정도였던 우리사주조합은 2002년 11월30일 임직원들의 퇴직금 출자를 계기로 보유 규모가 10배 가까이 늘었고, 사실상 지배주주가 됐다. 1천만원 이상 보유한 사주조합원만도 279명에 이른다. 이로 인해 한겨레는 이전의 ‘국민주’ 신문사에서 사실상 ‘종업원지주’ 신문사로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을 뺀 일반 주주의 구성을 금액별로 보면 10만원 이하가 3만7463명(60.9%)으로 가장 많았으며, 10만원~50만원이 27.2%, 50만원~100만원이 7.3%, 100만원~200만원이 2.89%였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4.8%로 압도적이었으며 인천·경기도 20.3%로 수도권 비중이 65.1%에 이르렀다. 그 다음으로 영남 13.8%, 호남 11.8%, 충청 5.2%, 강원 1.6%, 제주 0.8% 순이었다.
일반 주주 가운데 가장 많은 주식을 가진 사람은 경기 고양시에 사는 신재용씨이며, 7815만원어치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최학래, 고희범, 윤유석, 김명걸씨 등 전·현직 한겨레 이사들이 5천만~6천만원 정도였다. 1천만원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107명 가운데 유명인으로는 김대중(3천만원), 김영삼(1천만원) 전 대통령과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이 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 팔도강산 ‘한겨레 전도사’들 _ 서울·대전·부산…곳곳 주주·독자모임
서울, 대전, 부산 찍고 보령 거쳐 인천까지. 6만2천여 주주의 정성이 깃든 매체답게, 나라 곳곳에선 지금도 크고 작은 <한겨레> 주주모임들이 생동하고 있다.
부산한겨레가족모임은 88년 창간과 함께 만들어져 17년째 <한겨레> 사랑을 펼쳐오고 있다. 꾸준히 참여하는 주주·독자 회원만 40여명이고, 매달 둘째 월요일 정기모임을 연다. 이왈종(54·민주자주평화부산회의 간사장) 회장은 “<한겨레>에 난 기사를 스크랩해 북핵문제 등 각종 현안에 관한 토론을 벌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 때는 부산 서면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나가 <한겨레> 전단지를 나눠주고 구독신청도 받았다. 이 회장은 “우리가 만든 <한겨레>이니만큼, 제2창간도 아낌없이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대전모임(회장 김혜란·47)도 창간 때부터 이어져온 모임이다. 교사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시민활동가,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의 30여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2년전부터는 한달에 한번 초등학교 및 아파트 부녀회, 대덕연구단지 노조 등을 대상으로 문화기행 사업도 벌이고 있다. 서울엔 한겨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한사모·회장 노재우)이 있다. 초대 회장인 정형기(51)씨 등 창간주주·독자들이 모여 2001년 4월 만들었다. 다음카페에도 방(cafe.daum.net/hannews)을 열어 온·오프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카페 회원은 4일 현재 235명, 오프라인 회원은 50여명이다. 매월 둘째 토요일 정기모임을 연다. 겨울을 빼곤 모임 두세시간 전에 모여 <한겨레> 판촉활동을 벌인다. 김시열(43) 부회장은 “우리사회는 여전히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다”며 “그걸 바로잡는 수단인 <한겨레>가 아직 힘이 약해, 우리 이웃부터 독자를 늘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한겨레동아리모임·총무 정천식)이나 충남 보령(한겨레보령모임·회장 김태갑) 등에도 주주모임이 자리잡고 있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모임들도 적지않을 터이다. 보령모임 김 회장은 “<한겨레> 주주들은 전국 곳곳 없는 곳이 없다”며 “이들이 지역에서 희망을 싹틔울 수 있도록 <한겨레> 안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한겨레대전모임(회장 김혜란·47)도 창간 때부터 이어져온 모임이다. 교사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시민활동가,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의 30여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2년전부터는 한달에 한번 초등학교 및 아파트 부녀회, 대덕연구단지 노조 등을 대상으로 문화기행 사업도 벌이고 있다. 서울엔 한겨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한사모·회장 노재우)이 있다. 초대 회장인 정형기(51)씨 등 창간주주·독자들이 모여 2001년 4월 만들었다. 다음카페에도 방(cafe.daum.net/hannews)을 열어 온·오프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카페 회원은 4일 현재 235명, 오프라인 회원은 50여명이다. 매월 둘째 토요일 정기모임을 연다. 겨울을 빼곤 모임 두세시간 전에 모여 <한겨레> 판촉활동을 벌인다. 김시열(43) 부회장은 “우리사회는 여전히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다”며 “그걸 바로잡는 수단인 <한겨레>가 아직 힘이 약해, 우리 이웃부터 독자를 늘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한겨레동아리모임·총무 정천식)이나 충남 보령(한겨레보령모임·회장 김태갑) 등에도 주주모임이 자리잡고 있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모임들도 적지않을 터이다. 보령모임 김 회장은 “<한겨레> 주주들은 전국 곳곳 없는 곳이 없다”며 “이들이 지역에서 희망을 싹틔울 수 있도록 <한겨레> 안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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