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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체성 ‘흔들’… 새로운 가치 보여줘야

등록 2005-05-13 19:31수정 2005-05-13 19:31

왼쪽부터 최민희(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정현백(한국여성연합 대표), 박석운(전국민중연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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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민희(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정현백(한국여성연합 대표), 박석운(전국민중연대집행위원장) \\

정현백
기사 믿음 가지만 충실하지 못할 때 많아
조·중·동 의식한 과도한 당파성 문제

김기식
시대변화 걸맞은 정체성 정립 못해
정보 부족·일관된 정책 비판 없어

■ 한겨레 17돌 좌담 - 시민운동가들 쓴소리

창간 17돌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들로부터 <한겨레>에 던지는 쓴소리와 바람을 들어보았다. 지난 3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이 좌담회 참석자들은 비슷한 뿌리와 지향점을 지닌 <한겨레>와 시민운동단체들이 최근 느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한겨레>의 새로운 창간에 밑거름이 될 따가운 질책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회 진보진영에선 한겨레가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도 한다. 지금 한겨레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최민희 언론을 모니터하다보면 한겨레가 없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중진영 쪽에서 아쉽겠지만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한겨레가 없으면 이 정도 의제지형도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 이상 필요없다는 말은 비정규직 문제 등에 좀 더 적극적인 보도를 주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기식 시대 변화에 따른 정체성의 위기다. 창간 배경부터 민주화운동의 결정체로서 기성매체와는 다른 역할과 위상을 가졌다. 특히 남북관계, 한미관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이 한겨레의 독자적 존재의미를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 인터넷 매체와 언론 등에서 한겨레가 해왔던 역할을 일부분 맡고 있다. 한겨레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 위기의 본질이다.

박석운
‘현장’보다 제도권에 너무 가까워져
보안법 관련 ‘강 건너 불구경’태도

최민희
기자 성향따라 같은 사안에 다른 태안
한겨레 없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들기도

사회 독자들은 좀 더 현실적인 지적을 한다. 재미 없다, 감동이 없다, 가르치려 든다는 지적이다. 언론환경뿐 아니라 독자들도 바뀐 것 아닌가?

박석운 늘 보면서 느끼는 것은 2%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어느덧 제도화한 것 아닌가. 재미없고 고압적이라는 지적은 발로 뛰는 현장성이 부족한 탓이 크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달되면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라도 재미있을 수 있다.

정현백 인터넷의 무책임성에 비해 한겨레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준다. 현실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회로판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기사가 좀 부족하더라도 일정한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이 내용적으로 충실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회 한겨레가 독점적 지위를 잃었다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개혁적 입장에서 충실한 담론을 생산하는 곳은 아직은 한겨레밖에 없다. 그런데 한겨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기자 개개인의 성향이나 이념적 지향에 따라 지면에서 모순관계를 드러낸다. 언론개혁 문제를 다루면서 어떤 기자는 소유분산을 지적하지만 어떤 기자는 조중동의 불공정 거래를 깨야 한다고 말한다. 양자간에 소통이 있는지 당황스럽다.

한겨레가 가졌던 힘은 권력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 옳든 그르든 조중동이 정권을 비판하자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한겨레의 지위가 애매해졌다. ‘한겨레는 여당지’라는 이미지가 부여됐다. 또 하나의 힘은 금기시되거나 마이너한 의제를 사회 주요의제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겨레는 시대의 의제를 선도하고 있기보다는 설정된 의제범위 안에서 다른 신문과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러 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자기비전과 정체성을 못세우고 있는 것같다. 의제설정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겨레가 사회적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는 말은 당파성을 가져달라는 말로 들린다. 독재정권 시절의 언론의 역할과 달리 지금처럼 답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 당파성을 대변해야 하는지는 토론이 필요하다. 한겨레가 흔들리는 이유는 현재의 상황을 풀어갈 수 있는 답이 분명하지 않다는데 있다.

한겨레는 치열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투쟁 때 한겨레는 평론가식, 불구경식 보도태도를 보였다. 한겨레가 너무 권력과 제도권에 가까이 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발은 제도권에 두더라도 한발은 민생, 사회 현장에 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에서 발이 떨어져 있다. 여당이 헤매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고 문제제기를 했어야 한다.

결론을 정해놓고 기사를 쓴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한겨레가 정답을 정해놨거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기사를 다뤘다는 의미다.

사회 치열성 말고 심층성의 부족인가?

한겨레가 너무 당파적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당파적이지도 못하다. 게다가 자기 시각에서 사실을 재단하고 왜곡하는 신문이 문제인 것이지 당파성은 모두 가지고 있다. 한겨레에 대한 불만 가운데 하나는 정보의 부족, 다양성의 부족이다. 사람들은 관점뿐만 아니라 정보를 위해 신문을 본다. 독자들이 정보를 희생하면서까지 한겨레를 선택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다. 시대변화에 따라 자기의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가치, 예를 들어 평화, 인권, 환경, 복지 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부분에 대해 시대적 화두를 계속 던져야 한다.

당파성이 전적으로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우리처럼 당파성을 표방하면서도 언론사간에 육박전을 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당파성보다는 그때 그때 사안에 따른 당파성이 있어야 한다. 큰 전선을 긋고 ‘여기를 지키겠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조중동과의 관계를 의식한 과도한 당파성도 문제다.

우리 사회는 제2의 의제공백기에 들어섰다.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 국가운영시스템도 바꿔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앞으로 1~2년 사이에 누가 중요한 의제를 이끌어가느냐가 중요하다. 대안도 세우면서 의제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겨레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전체적인 수준에서 보면 한겨레는 자기정체성을 실종했다. 최근 한겨레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자기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했는지 의문이다. 어느 지면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흘러갈 때는 일관된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관점이 없는 것이다.

조중동과의 대척점에서 보면 다른 관점으로 보도를 하지만 과연 만족할 만한 심층성과 정확한 논평을 하고 있는지 깝깝할 때가 있다.


사회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는 진보와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가 너무 괴리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진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접근방식에 따라 그것이 진보냐 아니냐의 구분이 가능하다. 이 부분에 있어 한겨레가 오락가락하고 있지 않나 걱정이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디엠비’의 경우 한겨레는 비겁하다. 한겨레가 지켜야 할 방송의 공공성을 비켜갔다. 통신자본이 밀려오면 민주적 가치는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다. 답을 찾기 어려워 피해간다면 앞으로도 어렵다고 본다.

앞으로 5~10년 안에 보수와 진보 중 자기성찰력, 자기자정능력을 가지는 쪽이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제는 국민들도 한겨레나 시민운동, 진보진영에 대해 ‘당신들은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한겨레도 진보진영의 자기성찰, 내부문제에 대해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하지만 시민사회, 언론은 분명히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사회 시민운동 쪽에서 한겨레에 하고 싶은 주문이 있을 텐데.

한겨레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견인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인쇄매체를 보지 않는 세대를 의사소통의 장에 어떻게 끌어들일것인지, 국제사회와 한국의 집단정서 사이에 있는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짚어 줘야 한다.

한겨레건 보수신문이건 지면을 통해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한 쪽은 심층성 부족, 한 쪽은 편파왜곡보도로 신뢰를 잃었다. 조중동의 독자 매수로 급속히 신문시장이 망가졌는데도 한겨레는 소유분산에만 집중하고 언론운동진영의 신문시장 정상화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새로운 고민을 하는 집단과 교류하는 제2창간으로 나가야 길이 보일 것이다.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대중의 바다로 나갈 필요가 있다. 신문을 보지 않는 기층대중들이 많이 있다. 또 취재방식이나 취재영역의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대대적인 혁신운동이 필요하다.

정보와 관련된 스트레이트 기사는 인터넷으로 다 본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신문을 읽는 동기가 변하고 있다. 한겨레도 독자들이 신문을 보는 이유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변화를 선도하는 신문이 성공한다.

과거에 이런 것을 했다가 아니라 1988년에 이렇게 한 것처럼 2005년에는 이런 방식으로 열어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21세기를 새로운 가치로 열어 가야 한다. 열린신문이 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리/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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