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국적법이 늦어도 오는 27일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10일 오후 서울 목동 국적업무출장소에서 국적이탈 신고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김태형 기자
[기사AS] ‘국적포기’ 기사에 대한 독자들 의견에 답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입니다. 제가 12일 쓴 [국적포기 “살고픈 나라 만들어라”] 기사와 관련해서 여러분과 같이 생각 좀 해보려구요. [기사AS]라는 문패를 달았지만, 애프터서비스가 아니라 기사가 나간 뒤의 반응묶음에 그칠 수도 있을까 저어됩니다. 게시판에 의견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2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비난과 칭찬. 하나는 “이런 기사야말로 가진 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조·중·동 기사 아닌가? 정치꾼들이 썩었다고, 교육제도가 나쁘다고 조국의 국방 의무를 저버리는 것을 후진적 발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 독자는 “김순배 기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1. 한겨레를 떠나라. 2. 다른 직업을 찾아라. 이런 기사를 올려서 사람들 짜증나게 만들고 있어. 기자 생활하던 선배, 후배들 때려 치우고 나와서 다른 직업 가지더라.” 다른 하나는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라는 메일입니다. “국적 포기에 관한 기사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국적 포기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 말로만 국방의무를 중요시하는 건 좀 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적 포기자들의 근본 이유는 고치지 않고 잔가지만 쳐내니…. 저는 제 자신보다 부패한 나라를 선택할 수가 없네요. 한국이 항상 그립고 거기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게 제 꿈인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는 사실 이번 국적포기 사태와 비난세례를 정확하게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선명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왜? 인터넷에 넘쳐나는 감정적 반응들, “인간 쓰레기들 빨리 꺼져라”고만 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분노하는가’로 에둘러 들여다 봤습니다. 임지현 교수 “국적포기자 외국인 간주는 굉장히 폭력적”
“ 살고싶은 나라를 못만드니 애국주의 강요하는 경향”
%%990002%%탈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한양대 임지현 교수(역사학)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되었는데도,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식으로 국민의 의무를 영구불변의 신성불가침으로 여긴다. 한국에서의 국가주의적인 억압성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한민족’이라는 경직된 혈통적 민족개념 속에서,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배반자’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드러난 형태다.” “다시 민족주의를 꺼내 드느냐?”고 하실 분도 많을 것 같군요. 하지만, 임 교수는 “민족주의는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인데, 국가가 ‘살고 싶은 나라’를 체계적으로 만들지 못하니까 민족과 국가를 정서적으로나 애국주의적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정서에 젖었다는 것이죠. 어떠세요? 동의할 수 있나요? 사실, 저는 임 교수의 다음 말을 더 여러분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고구려, 독도문제, 역사 교과서 문제 등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화하는 일련의 동아시아적 상황이 무의식적으로 국가(국적)을 버리는 것에 대한 분노를 격하게 만들었다.” 짐작은 하시겠지만, 임 교수는 이런 까닭 등으로 홍준표 의원이 국적포기자를 외국인으로 취급해 각종 특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굉장히 폭력적이다”고 비판했습니다. 자, 임 교수는 “욕 먹는 데 이골이 났다”고 말했지만, 비난에는 신중하시길. 왜냐하면 임 교수도 “원정출산 등은 얄밉고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고 했으니까. “기자가 말한 개인의 선택은 결국 계급의 문제 아닌가”
김철규 교수 “‘개인의 선택은 자유’라지만 국적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특권층”
기자는 지난 기사에서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는가?”라는 일부의 의견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권’도 역시 논란이기는 합니다. 선택권에 대한 계급성의 문제 때문입니다. <한토마> 게시판에 올라온 “김순배 기자는 기사를 통해 병역 기피를 위해 일부 특권층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국적 이탈이 특정 계층이 아닌 국민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논객 ‘게시판’의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저의 선배도 그랬고, 고려대 사회학과 김철규 교수도 역시 계층간의 격차로 이 문제를 해석했습니다. 김철규 교수는 “국적포기에 대한 비난은 민족주의보다는 계층적으로 위계화된 것이다. 어찌됐든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특권층이다. ‘개인의 선택은 자유다’는 말이 그럴듯 하지만, 제한된 불평등한 선택권인 것이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지현 교수는 이런 “계층적 반감이 바닥에 깔린 민족주의의 문제를 덮어버린다”고 보시더군요. 이런 의식은 <한토마> 논객 ‘게시판’님의 아래 글에서도 녹아 있습니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자기만을 아는 비뚤어진 가치관이 빚어낸 결과며 그런 썩어빠진 사람들을 지도층입네 하고 활동하게 만들어준 국민들의 합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기적 욕심과 더러운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의 오염된 사고와 그릇된 관념이 병영 문화가 바뀌고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고 해서 바뀔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객체적 문제가 아니라 주체적 문제며 단순한 행위적 문제가 아니라 썩을대로 썩어버린 본질의 문제기 때문이다.” %%990003%%
아무튼, 김 교수가 몇 말씀 덧붙이셨는데, “계층간의 격차, ‘양극화’가 커진데다 박탈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제가 형성되면서 이슈화도 빨라졌다”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적대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의 문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도 “민족주의, 국가주의, 집단주의적 애국심이 감정적으로 인터넷상에 표출되면서 여러 배경으로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에 대해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시더군요. 논객 ‘한걸음씩’ “살 만한 나라, 갈 만한 군대 만드는 게 문제의 본질인가?”
사실, 제가 12일 쓴 기사는 ‘쏟아지는 비난과 별도로, 왜 이들이 조국을 버리려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 그런 면에서 김철규 교수의 이런 의견도 들어보시죠. “1980년대 이전은 강력한 국가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었지만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부를 줬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국가가 국민들에게 경제적인 보상 등을 조직화하는 데 실패했고, 그렇다고 기업이나 사회시스템이 삶의 만족감을 준 것도 아니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통치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합의 등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불안정 등 사회·문화적 불만들이 쌓이면서 ‘국가에 충성하라, 나라를 떠나지 마라’는 요구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것이 실제로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국적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까닭인 것 같습니다. <한토마> 논객 ‘한걸음씩’님의 글은 추천을 많이 받았더군요. “문제는 살만한 나라가 아니니까 떠나는 것이다? 갈만한 군대를 만들어야 갈것 아닌가? 과연 이런 사실이 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분명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 살자고 나라 팔아 먹었던 사람들 때문에 이 땅이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절이 싫어서 떠난 중이 그 절밥을 왜 먹는가 말이다? 절이 싫어서 떠났으면, 그 절밥도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것 아닌가 말이다”라는 글입니다. %%990004%%‘한걸음씩’님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김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라”와 비슷합니다.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라’라는 말이 떠나는 사람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자녀교육 등에서 지나친 경쟁이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전반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국가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경제적·이념적·정치적 조건이 필요하다. 국가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런 지원없이 국가에 부응만 하라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고 폭력적이다.” 한정숙 교수 “공동체 구성원이 권리만 누리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해해”
서울대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죠. 한 교수는 <한겨레>에 칼럼을 써오셨던 분입니다. 한 교수도 학생들과 국적포기 사태를 얘기하셨다고 하더군요. 한 교수는 민족주의보다는 공동체 건설의 문제를 제기하시더군요. 한 교수는 “민족주의보다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은 의무와 권리의 주체인데, 의무를 하지 않고 권리를 누리려는 것에 대한 반발이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한 교수는 일방적 비난보다는 건설적 방향으로 생각해보자고 하시더군요. “군대를 인간화하고, 징병제 자체가 폐지되고, 장기적으로는 평화체제쪽으로 가는 것, 모두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그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인권이 존중되고, 민주와 평등의 가치가 구현되는 쪽으로 변하는 모습이 보이면 일단한 살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나”라고 했습니다. 홍성태 교수 “ 지금 국적 포기자는 기득권자들이 저항하는 천민자본주의”
기자가 자신의 기사에 대한 변명이 지나쳤나요? 제가 자주 의견을 구하는 상지대 홍성태 교수(사회학)의 생각을 전합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국적포기가 아니라 국가포기요, 용납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징집을 피하기 위한 대단히 악랄한 행위며, 예외는 극소수다. 따라서 그 본질은 달라질 수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대물림하면서 무임승차를 하려는 천민자본주의의 양상이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도 어렵다. 구조적 개혁은 어렵고 개인적인 적응은 빠르다. 지금 국적을 포기하고 있는, 이미 권력을 갖고 있는 기득권자들이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사를 끝맺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도 어떻게 끝을 맺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부서에서 논쟁을 벌였습니다만, 그만큼 지금의 국적포기 및 비난사례를 똑 부러지게 해석하기 어려운 탓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 ‘광풍’이 불 때, 잠깐 멈춰서 다른 목소리도 한번 들어보자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토마>에서 차분한 논쟁도 벌이구요. 이 기사도 물론 그런 취지입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과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 저의 다른 목소리 들어주셔서 감사. 꾸벅.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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