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의료진이 전하는 투병생활
‘생명연장 거부’ 고인 뜻따라 교구청 동의받기도
‘생명연장 거부’ 고인 뜻따라 교구청 동의받기도
“고인은 무의미한 생명 연장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김수환 추기경을 간병해 온 의료진과 수녀들이 17일 고인의 투병생활을 전했다. 김 추기경의 주치의였던 서울 강남성모병원 정인식 교수는 “입원 당시 당뇨, 류머티즈 관절염, 전립선 비대증 등으로 혈당이 오르고 피로감을 많이 느꼈으며 식사를 잘 하지 못해 영양이 부족한 상태였다”며 “하지만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원치 않았던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 등의 인위적인 장치를 부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호흡·심박동·배설 등의 대사를 의료 장비로 지원할 경우 인위적인 생명 유지로 볼 수 있다”며 “부족한 영양을 채워주는 것 외에 인공적인 의료 지원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병원 쪽은 김 추기경이 입원한 뒤 내·외과 교수 등 6명으로 담당 진료팀을 꾸렸다.
의료진은 김 추기경이 의식을 잃을 경우에 대비해 천주교 교구회로부터 ‘무의미한 생명 연장 거부’에 대해 동의를 받기도 했다. 의료진은 “입원할 때부터 추기경께서는 ‘생명 연장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고하게 보였지만, 의사들은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교구청에 자문을 구하고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추기경은 입원 당시 “뭐든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선종 뒤 이뤄진 장기이식으로 기증이 가능한 것은 각막뿐이었다. 의료진은 “일반 조직은 숨지기 전에 이식이 가능하고 생명이 끊어진 다음에 줄 수 있는 것은 눈뿐”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김 추기경이 숨지기 2시간 전께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안구 적출 수술을 준비했다. 의료진은 “각막을 이식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지만, 장기이식법에 따라 이식자를 밝힐 순 없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1990년 안구 기증을 서약했다.
고인은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의료진과 간호 수녀들은 전했다. 한 의료진은 “추기경께서 ‘노환은 진단명이 아니다. 이렇게 오래 입원할 이유가 되는 괜찮은 진단명을 하나 지어 달라’는 말을 농담처럼 자주 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 추기경의 투병생활을 증언하며 잇따라 눈물을 훔쳤다. 간호 2팀장을 맡은 홍현자 수녀는 “여러 고비를 겪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힘들어하시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시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며 “아쉽긴 하지만 하늘에서 우리나라와 전세계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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