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노인복지회관의 ‘반짝반짝 봉사단’이 25일 경기 의정부의 한 경로당을 방문해 손마사지와 네일아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네일아트봉사단 “베풀며 새삼 존재감 느껴”
“내 손이 나이 여든에 호강하는구먼.”
25일 오후 경기 의정부 금오동의 한 경로당. 열 손가락을 곧추세운 한 할머니가 형형색색의 그림이 그려진 손톱을 내보이며 싱글벙글이다. 손톱에 별을 붙인 박양덕(83)씨는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며 “자식들도 안 해주는 호강을 여기서 받는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들의 ‘손톱 미용’(네일아트)은 대한사회복지회 의정부노인복지회관 소속 ‘반짝반짝 봉사단’의 작품이다. 봉사단의 구성원 역시 평균 나이 예순여덟의 할머니들이다. 전문가로부터 ‘특별 직업훈련’을 받은 봉사단은, 2년여 전부터 의정부 일대 경로당을 돌아다니며 네일아트와 손마사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전아미 사회복지사는 “네일아트의 경우, 봉사를 받는 노인뿐 아니라 봉사를 하는 노인들도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봉사단 이영자(70)씨는 “할매들이 처음에는 ‘손톱에 무슨 장난질이냐’며 시큰둥하다가도 예쁜 그림과 무늬가 그려지는 걸 보면 앞다퉈 손을 내민다”며 “늙어도 천상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고 말했다.
봉사 현장엔, 한국전쟁 때 남편과 헤어진 이야기, 길거리에서 장사하며 고생하던 절은 시절 이야기 등 ‘인생 수다’도 풍성하다. 봉사단 채정옥(69)씨는 “나도 자식들 출가시키고 한동안 우울증을 겪었다”며 “외롭고 퍽퍽한 노인들끼리 지나온 세월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암 진단 뒤 “늦기 전 꿈 이루려” 중학교 졸업
26일 오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아든 신순자(65)씨의 얼굴에서 항암 치료의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신씨는 2005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 의사는 한달만 늦었어도 암세포가 림프선까지 번져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어릴 적 찌든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겨우 마쳤어요.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다보니 어느덧 예순이더라고요. 그런데 난데없이 가슴을 잃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더 늦기 전에 꿈을 찾고 싶었습니다.” 2007년 3월 항암 치료가 끝날 즈음, 신씨는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늦깎이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행복감”을 느꼈다. 날마다 학교를 걸어다닌 덕분에 평소 그를 괴롭혔던 퇴행성 관절염도 씻은 듯 나았다. 하지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가슴을 도려낸 지 3년 반 만에 암이 재발했다. 다시 고통스런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치료 때문에 결석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너무 학교가 그리웠어요. 한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어요.” 처음엔 ‘제정신이냐’며 뜯어말리던 가족들도, 악착스런 그의 열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씨는 항암 치료가 끝나면 곧 고등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다. 그는 “새롭게 얻은 지식으로 복지관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26일 오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아든 신순자(65)씨의 얼굴에서 항암 치료의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신씨는 2005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 의사는 한달만 늦었어도 암세포가 림프선까지 번져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어릴 적 찌든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겨우 마쳤어요.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다보니 어느덧 예순이더라고요. 그런데 난데없이 가슴을 잃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더 늦기 전에 꿈을 찾고 싶었습니다.” 2007년 3월 항암 치료가 끝날 즈음, 신씨는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늦깎이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행복감”을 느꼈다. 날마다 학교를 걸어다닌 덕분에 평소 그를 괴롭혔던 퇴행성 관절염도 씻은 듯 나았다. 하지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가슴을 도려낸 지 3년 반 만에 암이 재발했다. 다시 고통스런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치료 때문에 결석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너무 학교가 그리웠어요. 한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어요.” 처음엔 ‘제정신이냐’며 뜯어말리던 가족들도, 악착스런 그의 열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씨는 항암 치료가 끝나면 곧 고등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다. 그는 “새롭게 얻은 지식으로 복지관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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