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광 기자의 독자포토스토리 <농촌>
전남 광양시 전월면 오사리에 사는 박종일(47)씨는 <한겨레> 창간독자이자 17년 동안 줄곧 한겨레를 보아온 애독자다. 1600여 평의 논에 비닐하우스로 호박을 재배하는 박씨는 군대시절을 제외하곤 고향을 떠나지 않은 농촌토박이다. 서울에서 반나절이 넘게 걸려 기자가 찾아간 날, 박씨는 이제 막 따낸 호박을 서울 가락시장에 보내기위해 포장박스에 담느라 땀방울이 온몸을 적셨다. 하지만 가격이 예년 같지 않아 근심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박씨는 한겨레와의 인연을 늘 소중하게 생각해 오고 있다. 87년 그 뜨거웠던 여름, 진실을 보도하는 신문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터에 한겨레의 탄생소식이 들리자 밤낮으로 이를 알리려 뛰어다녔다고 한다. 박씨는 주주모집과정에도 적극 참여해 농촌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창간주주를 모았고, 타지에 나가 노동일을 해 번 돈 30만원을 주식 사는데 전부 썼다 . <한겨레>가 나온 뒤에는 “기사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후련했다”는 그는 주요 기사는 스크랩하는 정성을 그동안 마다하지 않았다. 환경문제를 포함해 여러 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보인 박씨는 한겨레에 쓴소리를 해달라는 요청에 “암울했던 시절의 한겨레를 생각하면 가슴속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후련함을 느꼈다”며 고마울 뿐이라면서도 속내를 내비쳤다. “한겨레가 요즘 너무 상업적인 것이 눈에 많이 띄어요. 신문 팔아먹는 것에만 관심 두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사모 등 친노 세력에 대한 비판은 잘 찾기 어렵더군요.” 박씨의 일상은 여느 농촌풍경과 비슷하다. 6시께 일어나 해질녘까지 농삿일로 바쁘지만 한겨레를 읽는 시간만큼은 빼놓지 않는다. 박씨에겐 힘든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늘 반갑다. 우편함에 꽂혀있는 한겨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한 장 한 장 신문을 넘기며 농삿일로 쌓인 피로를 씻는다. 간혹 우편물량이 많아 신문 배달이 늦을 때면 오후 일을 마친 뒤 그 날 하루를 정리하며 신문을 읽는다. 중 1인 큰 딸과 집 앞 초등 분교 5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박씨는 아이 이름을 ‘빛나리’와 ‘빛나라’로 지을 만큼 한글사랑도 남 못지않다. 셋째가 태어나면 ‘빛나래’로 지을 계획도 세워 놓았다. 최근 재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박씨는 주변의 칭찬이 자자할 만큼 남 돕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성품 탓에 최근에는 마을 노인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농삿일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일을 즐기면서 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떼이는 셈 치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농사짓기 좋은 고향 광양자랑을 잊지 않은 박씨는 한겨레와 더불어 살아온 ‘평생 독자’로, 농부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올곧은 인생살이의 모범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강창광 기자
박종일씨의 주수입원인 호박.3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매일매일 쑥쑥자라는 호박과 하루종일 씨름한다.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첫째 박빛나리양의 등교길.하루 2차례만 들어 오는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학교버스를 기다리며 게시물을 읽고 있다.
분교로 전교생이 22명인 진월초등학교 5학년 재학중인 둘째 박빛나래(맨왼쪽).5학년은 단 2명으로 몸무게가 친구들의 2배가 넘게 나가 어른처럼 보인다.
퇴비를 내리는 박종일씨.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토양이 금세 나빠진다고 한다. 박씨는 5월말께 비닐하우스를 걷고 벼농사를 그 자리에 짓는다.
수확한 호박을 포장박스에 담느라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온 박씨가 우편함에서 한겨레신문을 꺼내 펼쳐보고 있다.
위성방송 수신기 아래서 박종일씨가 5일 동안 물에 담가 건진 모판용 볍씨를 푸대에 담아 발아시키기위해 볏단을 몇겹으로 덮고 있다.
호박꽃에 성장촉진제를 뿌리는 모습. 약을 뿌린 곳은 한쪽 꽃잎을 따 구별한다.
박씨는 한겨레와의 인연을 늘 소중하게 생각해 오고 있다. 87년 그 뜨거웠던 여름, 진실을 보도하는 신문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터에 한겨레의 탄생소식이 들리자 밤낮으로 이를 알리려 뛰어다녔다고 한다. 박씨는 주주모집과정에도 적극 참여해 농촌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창간주주를 모았고, 타지에 나가 노동일을 해 번 돈 30만원을 주식 사는데 전부 썼다 . <한겨레>가 나온 뒤에는 “기사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가슴이 후련했다”는 그는 주요 기사는 스크랩하는 정성을 그동안 마다하지 않았다. 환경문제를 포함해 여러 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보인 박씨는 한겨레에 쓴소리를 해달라는 요청에 “암울했던 시절의 한겨레를 생각하면 가슴속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후련함을 느꼈다”며 고마울 뿐이라면서도 속내를 내비쳤다. “한겨레가 요즘 너무 상업적인 것이 눈에 많이 띄어요. 신문 팔아먹는 것에만 관심 두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사모 등 친노 세력에 대한 비판은 잘 찾기 어렵더군요.” 박씨의 일상은 여느 농촌풍경과 비슷하다. 6시께 일어나 해질녘까지 농삿일로 바쁘지만 한겨레를 읽는 시간만큼은 빼놓지 않는다. 박씨에겐 힘든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늘 반갑다. 우편함에 꽂혀있는 한겨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한 장 한 장 신문을 넘기며 농삿일로 쌓인 피로를 씻는다. 간혹 우편물량이 많아 신문 배달이 늦을 때면 오후 일을 마친 뒤 그 날 하루를 정리하며 신문을 읽는다. 중 1인 큰 딸과 집 앞 초등 분교 5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박씨는 아이 이름을 ‘빛나리’와 ‘빛나라’로 지을 만큼 한글사랑도 남 못지않다. 셋째가 태어나면 ‘빛나래’로 지을 계획도 세워 놓았다. 최근 재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박씨는 주변의 칭찬이 자자할 만큼 남 돕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성품 탓에 최근에는 마을 노인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농삿일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일을 즐기면서 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떼이는 셈 치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농사짓기 좋은 고향 광양자랑을 잊지 않은 박씨는 한겨레와 더불어 살아온 ‘평생 독자’로, 농부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올곧은 인생살이의 모범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강창광 기자

박종일씨의 주수입원인 호박.3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매일매일 쑥쑥자라는 호박과 하루종일 씨름한다.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첫째 박빛나리양의 등교길.하루 2차례만 들어 오는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학교버스를 기다리며 게시물을 읽고 있다.

분교로 전교생이 22명인 진월초등학교 5학년 재학중인 둘째 박빛나래(맨왼쪽).5학년은 단 2명으로 몸무게가 친구들의 2배가 넘게 나가 어른처럼 보인다.

퇴비를 내리는 박종일씨.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토양이 금세 나빠진다고 한다. 박씨는 5월말께 비닐하우스를 걷고 벼농사를 그 자리에 짓는다.

수확한 호박을 포장박스에 담느라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온 박씨가 우편함에서 한겨레신문을 꺼내 펼쳐보고 있다.

위성방송 수신기 아래서 박종일씨가 5일 동안 물에 담가 건진 모판용 볍씨를 푸대에 담아 발아시키기위해 볏단을 몇겹으로 덮고 있다.

호박꽃에 성장촉진제를 뿌리는 모습. 약을 뿌린 곳은 한쪽 꽃잎을 따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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