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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발랄한 중·고딩…잔뜩 굳은 교사와 경찰

등록 2005-05-15 17:26

학생인권보장 요구하는 학생들 14일 오후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촛불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청소년 두발규제 폐지와 학생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연합
학생인권보장 요구하는 학생들 14일 오후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촛불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청소년 두발규제 폐지와 학생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연합

[현장리뷰]주말 ‘두발제한 폐지 축제’에서 나타난 대조적 표정

머리에 ‘바리깡’을 대지 말라고 외치는 중·고생들은 재기발랄했다. ‘학생다운 머리’의 가치를 지키려는 교사와 교육 당국은 이들의 발랄함에 잔뜩 굳어 있었다.

머리 길이·모양 자유화를 주장하는 중·고등학생들의 집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주변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분위기가 겉돌았다. 70여명의 학생들은 교육현장을 풍자하며 한판 축제를 벌였지만, 이들을 지켜보는 수백명의 교사와 교육청 관계자들은 우려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경찰도 전경 2천여명을 준비시키고 집회장 주변을 버스로 둘러쌌다. 모기를 잡으려고 도끼를 빼든 격이었으나, 분위기를 압도한 건 학생들이었다.

학생들 “감시해줘서 감사합니다” 유머로 ‘방법하다’

이날 오후 4시 광화문 정보통신부 앞 인도에서 열린 ‘두발제한 폐지를 위한 거리축제’는 주변 ‘감시자’들에 대한 감사인사와 함께 시작됐다. “너무 걱정해 주시느라 여기까지 찾아와주신 교육부 관계자분들, 경찰 아저씨들, 선생님들께 감사의 뜻을 표하자”는 사회자의 선창에, 참석한 70여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감사합니다~ 와~”라고 외쳤다. 그들의 감사인사는 감시자들에 대한 그들 나름의 ‘방법’(‘상대방 응징하기’의 뜻을 가진 네티즌의 외계어)인 셈이었다.

자유발언 시간에는 학교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산에서 왔다는 한 고등학생은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고 한다”며 “조금만 달라도 ‘너무 튄다’며 통일을 강조하는 학교야말로 우리 사회 온갖 차별 문화의 근원”이라고 일침을 놨다. 학생들은 ‘다시는 머리카락을 잘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스스로 머리카락 일부를 잘라 ‘마지막 바리캉’이라고 쓰여진 투명 상자에 담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이어 저녁 6시40분께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열린 ‘5·14 청소년 행동의날’ 행사는 집회라기보다는 즐거운 한판 축제였다. 300여명의 학생들은 스스로 준비한 ‘머리 길이·모양 단속 상황극’을 구경하며 깔깔거렸고, 학생 밴드들의 노래와 화려한 춤솜씨에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자 학생들은 ‘학생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촛불을 켰으며, “머리 규제 문제를 포함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청소년 인권 문제가 개선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 때문”이라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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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제한 남의 일 같지 않아”…‘장발’ 학생들도 연대

이날 행사에서는 학생들끼리의 연대의식도 엿보였다. 이 행사를 주최한 ‘두발자유를 위한 학생운동본부’의 홍보 담당 전아무개(서울 ㄱ고 3년)군은 “우리 학교에서는 두발 제한 규정이 없어 나는 자유롭게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닌다”며 “아직도 머리카락을 잘리는 대우를 받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뜻에서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 댄스팀 공연을 보고 함성을 지르던 서울 ㅈ여고 3학년생 2명도 “아직도 머리를 잘리고 있다는 애기를 듣고 함께 하고자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두발 제한을 받지 않는 학교에 다니는 ‘장발’의 자원봉사자들 여럿도 주변을 오가며 행사 진행을 도왔다.

학생들이 교육 현장 풍자와 웃음이 마무리될 즈음 ‘별 탈 없을 것이 확실함’을 확인한 교사들은 하나둘씩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이들 교사들의 표정에서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의정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왔다는 학생주임 교사는 “학교마다 머리 길이·모양에 관한 기준은 다양하고, 바리캉을 들어 머리길이를 단속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라면서도 ”학생들이 노란색·빨간색 물을 들이고 학교에 오도록 놔두는 것은 학부모들도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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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연스런 요구를 ‘준범죄’ 시각으로 보는 부자연스러움

한 교사는 집회에 참석하려고 지하보도를 나오는 학생에게 ‘어느 학교 학생이냐’고 물었다가, 학생이 ‘도대체 어느 학교 선생님이신가요?’라고 되묻자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전기를 든 채 현장을 지키던 한 사복경찰도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며 “공부 하려면 이럴 시간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이런 교사와 경찰들의 모습을 지켜본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은 “학생들로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인데도, 정부나 학교에서는 준 범죄인의 동향을 파악하듯 학생들을 살피는 것 같다”며 “어른들의 이런 태도야 말로 학생들이 나서서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정당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대 변화에 따라 사회 많은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교육현장에서 만큼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며 “당연히 기성세대와 의식있는 교사들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사회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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