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째 ‘근로정신대 배상운동’ 다카하시 마코도씨
20여년째 ‘근로정신대 배상운동’ 다카하시 마코도씨
백발의 60대 일본인이 20년 넘게 일제의 근로정신대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운동을 줄기차게 펼쳐 감동을 주고 있다.
퇴직 교사인 일본인 다카하시 마코도(66·사진)씨는 12일 광주기독교청년회(YMCA)와 5·18기념재단 등을 찾았다. 전남대에서 열리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결성식을 계기로 연대를 표시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장인 그는 2007년 7월부터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77차례 연인원 600여명이 참석한 금요시위를 이끌며 관심을 모았다.
“역사 교사로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가 저지른 불법 행위를 알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어요. 20년 전 나고야의 지역사를 조사하다 우연히 조선인 여성 근로정신대의 강제동원과 인권유린을 알았어요.”
그는 이때부터 13~14살 소녀들을 진학이나 월급으로 속여 일본에 끌고온 뒤 혹독한 노동을 시키고 약속한 임금조차 주지 않은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규명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지원회는 1999년 3월 양금덕(80)씨를 비롯한 피해자 8명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1명에 3천만엔씩 2억4천만엔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을 계기로 조직됐다. 회원은 학자·교사·주부 등 1100여명이다. 이 단체는 회원한테 한해 3천엔씩 회비를 거둬 재판에 출석하는 원고들의 교통비와 체류비를 대기도 했다.
또 이 문제를 일본에 알리려고 2000년 자료집 <내 생전에 이 한을>을 일어판과 한글판으로 출판했고, 연극 <봉선화>(2004)와 연주회 <그 소녀들을 잊을 수 없다>(2005)를 공연하는 등 각종 행사를 이어왔다.
도쿄 미쓰비시 앞 금요시위는 일본 대법원 상고를 계기로 시작됐지만 지난해 11월 기각판결이 났는데도 1년 8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다. 나고야에 사는 그는 360㎞ 떨어진 도쿄까지 신칸센으로 70여 차례를 왕복하는 뚝심을 보였다. 거리로는 이미 지구를 한 바퀴 돌았고, 기차 삯으로 주마다 2만2천엔(30여만원)을 기꺼이 내놓았다. 마뜩잖게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방해와 폭행도 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소송을 뒷바라지하려고 48차례 한국을 찾았고, 5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는 등 열성을 다했다.
“한국인들이 아직도 군대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구별 못하는 게 안타깝다. 광주의 시민모임은 한국인들한테 진상을 알리고, 일본에서는 기각 판결이 났어도 국제노동기구에 호소하는 등 활동을 지속하겠다.”
그는 게이오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1967~2003년 아아치 현립고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다. 아이치에서 평화위원회 이사장, 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 사무국원, 헌법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인 양심적 지식인이다. 광주/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그는 게이오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1967~2003년 아아치 현립고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다. 아이치에서 평화위원회 이사장, 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 사무국원, 헌법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인 양심적 지식인이다. 광주/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