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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광주항쟁에 팔걷고 나섰던 송백회 ‘오월의 누이들’

등록 2005-05-17 18:19수정 2005-05-17 18:19


△ (사진설명) 1980년 5월 20대 후반~30대 초반이던 송백회 회원 20명의 모습. 초대 회장 나혜영(강신석 목사 부인·뒷줄 왼쪽에서 세번째)씨를 비롯해 홍희윤(2대 회장·소설가·뒷줄 왼쪽 첫번째), 김경천(전 민주당 국회의원·뒷줄 왼쪽에서 네번째), 선소녀(시민군 항쟁지도부 이양현씨 부인·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씨 등이 보인다. 송백회 제공

등사기 밀던 손으로 주검을 거두었소

시민군들 밥해 먹이고
투사회보도 만들었다
죽음·구속·수배·질병…
온갖 고초 다 겪었다
그대로 늘푸른 소나무
오월 정신 이어간다

“여성들은 지키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뭔가를 보살피려 하죠. 이런 태도가 5·18 민중항쟁과 시민군 지도부를 지탱해준 힘이었다고 봐요.”

광주지역 민주여성들의 모임인 송백회의 총무였던 정현애(53·전교조 해직교사)씨는 17일 ‘1980년 5월 광주’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등사기를 밀었던 회원들의 용기와 헌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회원들은 항쟁 초기 평소 모임을 열었던 녹두서점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동참이 늘면서 공간이 비좁아지자 전남도청 부근 광주여자기독교청년회관으로 옮겨 △항쟁 지도부 밥 짓기 △희생자 주검 처리 △물품 조달과 모금 △회보 제작과 선전 등 활동을 펼쳤다. 이곳에서는 홍희윤(소설가), 정현애(녹두서점 운영), 임영희(현대문화연구소 간사), 정유아(YWCA 간사), 이윤정(YWCA 간사)씨 등 회원들이 노동자와 대학생 틈에 섞여 검은 리본을 만들거나 투사회보를 제작했다.

송백회(松柏會·소나무와 잣나무같이 늘 푸르고 기백이 있는 모임이라는 뜻)는 1978년 11월 광주여자기독교청년회에서 만들어졌다. 애초 민주인사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구속자 부인, 운동권 학생, 단체 활동가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회원들은 대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78년 11월 광주·전주·대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심수를 위해 털양말 170켤레를 짜고, 같은해 12월 광주 계림동 성당에 모인 농민 800명의 2박3일 끼니를 거뜬히 해결하며 연대와 신뢰를 다졌다.

이후 1년 동안 녹두서점 등지에서 다달이 학습모임을 열어 회원을 50여명으로 늘렸다. 활동 영역도 양심수 영치금 모금, 백제야학 비품 마련, 농촌연대 방안 모색 등으로 넓혔다.

이런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5·18 민중항쟁이 터졌다. 회원들은 5·18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죽음·구속·수배·질병·이혼 등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5·18 직후 조아라(YWCA 회장·작고), 이애신(YWCA 총무·작고), 정현애씨는 구속되고, 이윤정·정유아·임영희씨는 수배를 피해 도피해야 했다. 송백회도 신군부의 수사망이 좁혀들면서 해체의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이들은 조직의 틀 없이도 생활 속에서 오월 광주의 정신을 실천하고 구속자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정성을 들였다. 회원들의 도피처와 살림집은 5·18의 진실과 운동권의 가요를 녹음해 배포하는 거점이었다. 수배자들의 도피 자금과 도피 장소를 마련하는 데도 앞장섰다. 이 때문에 회원들은 시국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번번이 수사선상에 오르내렸다.

홍희윤씨는 “회원 여럿이 시대와 맞부닥쳐 죽음을 맞거나 폐인이 되는 비운을 맞았다”며 “탄압과 고통으로 담금질된 결속은 회원들이 이후 여성·노동·농민 등 부문운동으로 진출해 광주의 정신을 잇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87년 재건을 시도했지만 부문운동이 활발해지자 일 중심으로 뭉치는 생활공동체를 유지해왔다. 이들은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곳에 주목하고 △82~87년 5·18 피해자인 버스기사들의 자녀를 위한 장학보험 불입 △87~90년 광주지역 달동네의 빈민탁아운동 시도 △90~98년 나주 정신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김영철(시민군 기획실장·작고)씨 뒷바라지 등을 이어갔다.

시고 떫은 시련 속에서도 40대 후반과 50대 초반 ‘오월의 누이’로 뿌리내린 이들은 해마다 5월이면 민족시인 김남주 시비 건립(2000년)과 윤상원·박관현 등 들불 7열사 기념탑 건립(2002년)에 동참하며 광주의 얼을 잇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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