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단둥의 한 파출소에서 진주가 갓 나온 호구를 받아들고 장춘옌 부부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진주의 얼굴. 사진 <단둥망>
탈북자 엄마는 북한 압송
재중동포 아빠는 행방불명
호적없어 학교못가는 사연에
시 정부 등 도움 취학 꿈 이뤄
재중동포 아빠는 행방불명
호적없어 학교못가는 사연에
시 정부 등 도움 취학 꿈 이뤄
중국 단둥에 ‘활짝 핀 온정’
2000년 단둥의 한 채소시장 근처 허름한 아파트에 젊은 부부가 찾아들었다. 남편은 용정 출신의 재중동포였고, 아내는 국경을 넘어온 탈북자였다. 짐이라곤 보따리 몇 개가 고작인 이들은 얼마 뒤 이곳에 터를 잡고 조용히 생계를 꾸려갔다.
옆집에 사는 중국인 장춘옌(54) 부부가 이들에게 넌즈시 손길을 내밀었다. 2년 뒤 진주가 태어났다. 장씨 부부는 마치 친딸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젊은 부부가 밖에 나가 날품팔이를 하는 동안 짬짬이 집에 들러 진주를 돌봤다. 장씨 부부 역시 막노동과 가정부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었지만, 진주에겐 사랑이 넉넉한 큰아빠, 큰엄마였다.
2005년 9월 진주의 삶에 풍파가 닥쳤다. 진주의 부모가 잠시 옌볜(연변)에 다녀오겠다며 장씨 부부에게 진주를 맡기고 3000위안까지 빌려 집을 떠난 뒤 소식이 끊긴 것이다. 백방으로 이들 부부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장씨는 보름 뒤 진주 엄마가 북한으로 압송되고, 아빠는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장씨 부부는 진주의 ‘진짜 부모’가 됐다. 그러나 진주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서 장씨 부부의 주름살이 깊어졌다. 국적은 물론 호구도 없는 진주는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주는 학교에서 돌아온 친구들이 숙제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몰래 지켜보며 상심에 빠졌다. 옷장에서 붉은 천을 찾아내 학생들이 목에 매는 붉은 스카프를 만들어 혼자 거울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진주의 이런 딱한 사연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단둥 곳곳에서 ‘진주 학교 보내기 운동’이 펼쳐졌다. 관할 파출소에선 병원에 있던 진주의 출생기록을 찾아내 공안당국에 진주의 호구를 신청했다. 시당국에선 진주에게 다달이 270위안의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학교에선 교장이 나서 진주의 입학을 언제라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단둥의 한인들 사이에서도 진주를 도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단둥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김아무개(47)씨는 “진주를 돕는 중국인들의 온정에 감동했다”며 “개인적으로라도 작은 정성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로켓 발사 움직임으로 이곳도 뒤숭숭하지만, 그래도 인정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고 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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