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희씨의 육필 메모 (연합뉴스)
지난 15일 경기도 화성시 입파도 근해에서 발생한 레저용 보트 침몰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인 구자희(30.여)씨는 사고당시 남편과 6살난 딸이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 바닷물에 잠긴 채 의식을 잃으며 죽어가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주변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있다. 이런 사실은 구씨가 구조된 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친척에게 구술한 A4 용지 2장 분량의 사고당시 메모에서 18일 밝혀졌다. 당시 보트에 타고 있던 8명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배가 뒤집어진 뒤에도 상당 시간 서로를 격려하며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구자희씨 진술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15일 오전 4시 10분 경기도 화성시 입파도. 야유회를 마친 구자훈(39)씨 가족과 매제 김심환(33)씨 가족 등 2가족 14명 중1차로 8명이 구씨 소유의 1t급 레저용 보트에 몸을 싣고 자신들의 차량이 주차된 대부도 전곡항으로 향했다. 이날 오전 9시께 이미 한 차례 전곡항에서 입파도까지 같은 배를 타고 온데다바람이나 파도도 잔잔했기 때문에 구씨 가족은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동안의 나들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운항 시작 10여분 뒤. 보트가 그물에 걸렸는 지 보트 앞부분이 들리면서 배가 가라 앉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한다"
보트를 조종하던 구자훈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고 구씨의 여동생 자희씨는 딸 도연(6)양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떻게 해야 돼?"
자희씨가 보트 앞부분을 붙잡고 있는 남편 김심환(33)씨에게 소리쳐 물었고 김씨는 "그 옆에 동그란 거(김양식장 부표) 붙잡고 있어. 내가 갈께."라고 답했다. 보트 주인 구자훈씨는 평소 뛰어난 수영 실력을 바탕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물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보트를 다시 세워 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파도도 잔잔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지나가는 배만 있으면 금방 구조될 수 있어"라고 서로 격려하며 버텼다. 가족 중 어른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물 위에 떠 있는 6살, 5살, 3살바기 여자 어린이 3명을 향해 '곧 구조될거니까 조금만 참자'라는 말로 다독였다. 그 때 먼발치에서 보트가 지나는 것이 보여 가족들은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일제히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무심한 보트는 이들을 보지 못한 채 멀리 사라져갔다. 이후로 밤이 찾아왔고 물 위에 떠 있던 식구들도 지쳐만 갔다. 여섯살짜리 도연양에게는 물 위에서 벌인 4시간여의 사투가 힘에 부칠 수 밖에없었다.
"도연아, 자면 안 돼."
엄마 구자희씨가 있는 힘을 다해 도연양의 구명조끼를 흔들며 깨웠으나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여보, 도연이가 정신을 잃어요."
가까이에 있던 남편 김씨에게 소리쳤지만 김씨 역시 "여보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의식을 잃어갔다. 남편과 딸이 눈 앞에서 숨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검은 바다 위에 눈물을 쏟아내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칠흑같은 바다에서 부표를 잡고 버티기를 14시간. 16일 오전 6시 20분 자욱한 안개 사이로 해경 경비정이 나타났을 땐 이미 다른가족 7명은 모두 숨진 뒤였다. 구씨의 여동생 자영(28)씨는 조카 지현(3)양을 끝까지 등에 업은 채 사체로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함께 입파도에 갔던 구자경(29.여)씨는 "1시간이면 입파도에서 전곡항에 갔다가 다시 올 시간인데 오지 않아 오후 6시 30분 해경에 신고를 했다"며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구조작업이 좀 더 빨랐더라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인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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