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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심장과 땅의 접촉! 나는 고요해졌다

등록 2009-04-14 14:04수정 2009-04-14 14:28

수경 스님과 문규현·전종훈 신부가 이끄는 오체투지 순례단이 지난 10일 공주시 정안면 23번 국도길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오체투지 순례단 제공
수경 스님과 문규현·전종훈 신부가 이끄는 오체투지 순례단이 지난 10일 공주시 정안면 23번 국도길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오체투지 순례단 제공
아스팔트 위 매캐한 먼지…질주하는 덤프트럭
땡볕에 몸이 무거워지던 순간, 호흡을 찾았다
이경미 기자 ‘오체투지 순례단’ 체험기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심장이 유난히 팔딱팔딱 뛰었다. 심장의 고동이 땅에 닿은 이마까지 전해졌다.

지난 10일 아침 8시30분 충남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 첫 징소리와 함께 오체투지 순례가 시작됐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전종훈 신부님이 앞줄에 섰다. 참가자 40여명은 두 줄로 뒤를 따르며 하나, 둘, 셋, 세 걸음을 걷고 바닥에 엎드렸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얼굴을 묻으니 매캐한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육중한 덤프트럭의 타이어가 귀 옆으로 쌩하고 지나갔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박자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땅에서 겨우 일어나면 맨 앞줄의 스님과 신부님들은 이미 다시 엎드리기 시작했다.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 진행팀장인 명호(40)씨가 “힘을 주면 몸이 더 힘들다. 몸에 힘을 빼야 편안하다”고 알려줬다.
이경미 기자.
이경미 기자.

이날 순례단은 보물리를 출발해 천안 방향 23번 국도길을 헤쳐갔다. 지난달 28일 충남 계룡산 신원사에서 시작한 순례가 이날로 14일째다.

10분에 150m. 10분 걷고 5분을 쉬었다. 한 시간쯤 지나니 몸은 익숙해졌지만 마음의 어지러움은 가시질 않았다. 머릿속은 서울에서 가져온 생각들로 가득했다. 문규현 신부님을 붙잡고 물었다. “잡념이 떠나지 않는데 어떡하면 좋죠?” 문 신부님은 말없이 계속하라는 손짓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잡념 속에 고요함이 있어.” 11시30분, 오전 일정이 끝났다. 순례단 차 그늘에서 예닐곱이 앉아 시원한 국수 국물을 들이켰다. 충남 부여에서 온 정운식(79) 할아버지는 “오후에는 도저히 못하겠다”면서도 “엎드려 보니까 새삼 땅의 고마움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후 2시에 다시 길을 나섰다. 해가 머리 꼭대기를 지나면서 아스팔트를 데워놓았다. 배로는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고 등 위로는 더운 햇볕이 쏟아졌다.

숨을 내쉬고 힘을 쭉 뺐다. 딱딱한 바닥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다시 징소리에 맞춰 숨을 들이마시며 일어났다. 호흡을 찾았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몸에 집중했다. 자연스레 잡다한 생각이 하나둘 머릿속을 떠났다. 소음도 점점 멀어졌다.

첫날부터 순례단에 참여한 프랑스인 수브라(33)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7개월 전 한국에 왔다. “하루하루 걸을수록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쉬워진다. 걷는 동안 명상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게 즐겁다.”

오후 5시, 뜨거웠던 땅이 식을 무렵 4㎞의 순례가 끝났다. 참가자들은 길가에 둥글게 모여 다같이 큰절로 하루 순례를 마무리했다. 길을 걷는 동안 소똥 냄새 나는 밭을 지났고, 다리를 건넜고, 산업단지를 스쳐갔다. 길가엔 개나리와 민들레가 노랗게 폈다. 길 주변엔 생명이 가능했지만, 아스팔트 위엔 생명의 흔적조차 없었다. 순례단은 앞사람 등에 적힌 ‘사람·생명·평화의 길’이라는 문구를 보며 걸었다.

왜 이렇게 느리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아무도 보지 않는 일을 계속하는 것일까. 자동차로 두세 시간이면 충분한 길을 죽을 힘을 다해 두 달 동안 간다. 남을 향하거나 남의 잘못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하고 나의 속도부터 바꾸어 놓고자 함이 아닐까. 수경 스님은 오체투지 발원문에서 “나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순례단은 6월9일 임진각 망배단에 도착할 예정이다. 모두 230㎞를 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엎드리며 간다.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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