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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름을 밝히라”는 분노는 이해하지만…

등록 2005-05-18 19:12수정 2005-05-18 19:12

새 국적법이 늦어도 오는 27일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10일 오후 서 목동 국적업무출장소에서 국적이탈신고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김태형 기자
새 국적법이 늦어도 오는 27일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10일 오후 서 목동 국적업무출장소에서 국적이탈신고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김태형 기자

자녀 국적포기 공직자 실명공개 여론 맞서 ‘마녀사냥’ 우려 신중론 고개

‘공직자의 도덕적 책임이냐, 개인의 사생활 보호냐.’

국적 포기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에 이어 자녀의 국적을 포기한 공직자의 실명 공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 실명 공개는 ‘마녀사냥’이라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적 포기에 대한 여론이 그러했듯, 실명 공개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이다. <네이버>가 18일 진행하고 있는 여론조사에서는 오후 4시30분 현재 89.1%가 ‘공직자 윤리 강화’를 명분으로 실명 공개에 찬성하고 있다. 사생활 침해라는 의견은 10.5%에 그치고 있다. 다소 편차는 있지만, <인터넷 한겨레>가 실시하는 조사에서도 74.9% 대 25.1%라는 압도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인터넷에는 “공무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 “신상을 공개해서 우리나라에서 발 못붙이고 살게, 국민의 의무를 저버린 양아치들에게 철퇴를 가해야 됩니다”, “나라 지키는 것은 안 중요하고, 사생활은 중요하다니요?”, “기득권자의 권리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등의 의견이 넘쳐나고 있다.

네티즌 여론 9 대 1…명단공개 거부하는 법무부에도 뭇매


법무부도 난타를 당하고 있다. “적법 절차에 따른 국적 포기는 사생활이며, 실명 공개의 명분보다 사생활 침해 우려가 더 크다”며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데 대해 “법무부 직원 중에 국적포기자가 있는지 조사하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무섭게 몰아치는 여론의 파도 마루에 올라탄 이는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다. 홍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직자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살며, 국민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예산을 통제할 의무는 국회의원에게 있다”며 “법무부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장관을 고발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홍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법무부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홍 의원은 지난 17일 국적포기 신청자 부모 가운데 직업란에 공무원이라고 적은 국립대 교수의 대학과 성을 공개하며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일하면서 자식의 병역 면탈에 앞장 선 공무원이나 국·공립대 교수들을 공직에 놔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 17일 오후 국회 기자실에서 홍준표 의원이 국적법 개정안 통과 이후 국적포기자 부모 가운데 공무원의 명단을 밝히고 있다. 홍 의원은 성만 있고, 이름이 빠진 이 명단에 대해 이름까지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전문가들 “공직자의 사생활은 제한받을 수 있지만 ‘괘씸죄’ 적용은 안돼”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는 ‘공무원들의 사생활 침해 우려’ 쪽으로 쏠리고 있다.

임지봉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들은 알권리를 갖고 있으므로 공직자들의 프라이버시는 일반인에 견줘 더 제한 받을 수 있다”면서도 “공무원도 공무원이기 이전에 인격을 가진 한 명의 국민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적포기에 대한 비난이 일자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고려 등 신중한 검토없이 인기에 영합해 감정적인 조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홍준표 의원이 ‘괘씸죄’로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공직자의 인격이 제한받을 수 있지만, 현재 맡고 있는 공직과 직접 관계가 있는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며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는 자녀의 국적포기를 공직자라고 해서 이름까지 공개할 경우 ‘사회적 인격상’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국적포기가 옳으냐 그르냐와는 별도로, ‘괘씸죄’로 응징해야겠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은 이번 논란을 이데올로기화시켜 당사자를 매도하려는 것일 수 있다”며 “신판 국가보안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율사 출신 정치인들도 비슷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문병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적 포기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며 “공무원이라고 해도 이를 비난할 수는 있지만 명단을 공개해 인민재판 하듯 몰고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와 비교도 잘못”

이번 사안을 청소년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와 비교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예방효과 등이 고려된 것으로, 국적포기의 경우와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고 말했다. 강경근 교수도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는 예방효과 등 사회적 공익이 앞선다고 봤지만, 국적포기는 개인적인 선택”이라며 “이름이 공개될 경우 국적을 포기한 여러 개인적 이유와 관계없이 모두가 병역을 회피하기 위한 결정을 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직자라고 하더라도 직급에 상관없이 무조건 공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현행 공직자윤리법 등도 재산등록은 4급(경찰·세무직 등 7급) 이상, 재산 공개는 1급 공무원 이상 등 정보공개의 범위 등에 고위직과 하위직 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 “병역 기피를 막기 위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국적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대통령이나 장관급이라면 공개할 필요가 있겠지만, 공무원은 모두 공개하자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언론인권센터 안상운 변호사도 “공직자라 하더라도 선출직과 임명직, 고위직과 하위직이 다르다”며 “법률적 규정없이 장관이나 9급 공무원에게 똑같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이름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17일 오후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국적법 후속법안 발의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


“재직기관의 이념 등에 어긋나는지 판단해 내부징계하면 될 일”

이에 따라, 실명공개에 따른 ‘사회적 매장’보다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상희 교수는 “공직자의 국적포기가 재직기관의 이념 등과 맞는지 판단한 뒤 문제가 되면 내부적으로 징계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인사관련 부처 관계자도 “자녀의 국적포기 행위가 품위를 손상하는 것인지는 각 소속 기관이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심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법 규정은 모호하다. 국가공무원법 63조(품위유지의 의무)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도 고위 공직자의 재산등록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자녀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확인된 교수가 소속된 충북의 한 국립대는 18일 “자녀 국적 포기를 이유로 신분상의 조처를 취하기는 어렵다”며 “자녀의 국적 포기가 국민적 정서에 부합되지 않고 이 때문에 도의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된다는 반론도 없지 않은 데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이로 인해 신분상의 조처를 취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새 국적법 시행을 앞두고 국적포기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새 국적법이 통과된 지난 4일부터 17일 현재 1073명에 이르며, 이는 2003년 한해 동안의 국적포기 건수 734건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또 국적포기에 대한 비난과 불이익이 거론되면서, 국적포기 취소 사례도 지난 10~12일 각 1건, 13일 7건, 16일 15건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 김순배 황준범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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