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9일 오전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에서 윤기원 ‘함께하는 교육시민 모임’회장과 박경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수석부의원장, 박경양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회장(왼쪽부터)등이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부활하려는 서울대의 2008년 대학입학시험 방침에 항의하는 편지를 이종섭입학관리본부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김정효기자
“우수학생 더 촘촘히 ‘싹쓸이’의도”
대학과목 선이수 제도 등 대안 필요
서울대가 2008 학년도 입시에서 ‘논술형 본고사’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서울대 등 주요대의 총장들까지 가세해 ‘3불(본고사, 고교 등급제, 기여 입학제 금지) 정책’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지금의 틀 속에서도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는데도 ‘본고사 허용’ 등을 요구하는 것은 “점수순으로 학생을 더욱 촘촘히 줄을 세우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 3불정책 합의 가능한데도 일방적 흔들기=정운찬 총장이 선두에 서서 3불 정책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서울대 쪽에서 특히 문제를 삼는 것은 본고사 금지다. ‘3불’ 가운데 ‘2불’인 기여 입학제와 고교 등급제 금지는 서울대 안에서도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 정서상 용납되기 힘들다는 것이 물론 배경이다. 문제는 나머지 ‘1불’인 본고사 금지다. 이 문제도 따지고 보면 서울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는 현재 ‘논술 외 지필고사’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 사고력 측정에 중점을 두면서, 교육과정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국·영·수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문제라면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역시 자신들이 주장하는 논술 유형이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관계자는“단순풀이 형태의 과거 본고사는 학생 변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식을 가지고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수학의 경우, 학생 능력을 측정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어떤 형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식을 활용해 답을 내도록 하는 유형도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2분의 1이 유리수임을 증명하라’는 유형의 문제는 증명 과정 자체가 논리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바람직한 문항이나, 교육부는 이런 유형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태중 중앙대 교수는 “서울대가 이야기하는 통합 교과적인 논술은 학교 공부만으로 준비할 수 없다”며 “논술이 강화되면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본고사가 뭔지를 정의내리기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증명 문항 역시 암기에 기초한 전형적인 수학 문항인지, 아니면 사고력과 추리력 측정에 중점을 두었는지를 따져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고사 금지라는 큰 틀에서 절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대도 여기에 동의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논술 유형에 대해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논술을 주요 전형요소로 내세운 것”이라고 해명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서울대가 밝힌 논술유형이라면 교육부와 얼마든지 타협 가능하다”며 “대학이 이성적으로 ‘3불 정책’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음에도,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3불 정책’ 흔들기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평준화 등 교육정책의 근간을 흔들려는 목적의 대안 없는 접근이라는 비판이다. ◇ 삼불 폐기하면 경쟁력 강화되나?=서울대 평의원회는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선발 자율권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이 원하는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대학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우선 서울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뚜렷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울대가 내신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도 최근 몇 해 동안 정시에서 계속 수능 반영 비율을 높여 왔던 점을 예로 들었다. 서울대가 시험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데만 주력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가 요즘 내세우는 지역균형 선발제도 교육부의 강조로 마지못해 시행한 것”이라면서 “서울대의 인재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대가 말하는 선발의 자율성이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더욱 촘촘히 줄을 세워 ‘싹쓸이’를 하겠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는 것이다. 대학 서열화 체제 속의 기득권에 기반한 이런 싹쓸이가 대학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지는 회의적이다. 강태중 교수는 “대학의 경쟁력은 선발뿐 아니라 대학의 학사운영, 석·박사 등 자격관리, 교수 임용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는 선발 자율권은 주장하면서도,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대학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법인화 전환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대학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장치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계속 보장돼야 한다”고 매달리면서, 시험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는 선발의 자율권만 부르짖는 모순된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대학과목 선이수제 활성화도 대안=대학들이 본고사를 통해 학생을 공정하게 선발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서강대의 논술 문제 유출에서 보듯이 대학들이 본고사 관리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첨단장비를 동원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대학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대학이 본고사에 집착하지 말고 고교 쪽에 어려운 과목도 개설해 제대로 가르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곧, 대학교의 전문교과목을 고교나 대학에서 미리 이수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입학 때 가산점을 주는 대학과목 선이수(AP)제의 활성화를 통해 3불 정책의 일부 한계를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본고사는 70년대 방식”
김진표 교육부총리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은 19일 오전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균형 선발과 특기자 전형, 정시 모집 인원을 각각 3분의 1로 하겠다는 2008 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은 교육부의 내신 중심 선발제도의 근본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입시안의 수정을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서울대 총장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을 통해 △지역균형 선발 인원을 3분의 1에서 더 확대하고 특기자 전형 인원을 최소화할 것 △특목고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동일계 특별전형을 도입할 것 △다단계 전형을 폐지하고 전형 방법을 다양화할 것 △지역균형 선발, 특기자 전형, 동일계 특별 전형, 정시 전형의 모집 시기를 일치시킬 것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정말로 남다른 특기를 가진 학생들은 결코 정원의 3분의 1이나 차지할 정도로 많을 수 없다”며 “따라서 특기자 전형 비율을 대폭 줄이고 외국어, 과학 분야는 동일계 특별 전형으로 전환해 그야말로 순수한 특기자를 뽑는 전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각 단계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다단계 전형은 학생들을 내신과 수능, 본고사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내신과 수능 성적을 과목별, 영역별로 조합해 활용하고, 학과별로 관련 교과에 가산점까지 준다면 등급제에서도 얼마든지 최상위권 변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내신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거나 수능 모든 영역에서 1등급을 받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들은 “서울대 입시안은 특기자 전형 모집인원을 늘림으로써 사실상 고교 등급제를 제도화하고, 본고사를 부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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