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이광재 단지 놓고 누리꾼 ‘80년대 녹화사업’ 논란
“같은 상황과 번뇌 속에서 저 역시 손가락을 버렸습니다. 저 역시 결코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솔직한 해명이 다행이다 싶습니다.”(‘함께’)
“군입대가 두렵지 않았다면서 왜 오른손 검지를 잘랐나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왜 하필 오른손 검지를 잘라 이런 잡음이 나도록 하셨나요?”(‘단지’)
“인천 부평 주물공장에서 기계에 잘렸다고 본인이 밝혔던 지난 변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해명하지 않으면 진실로 인정하기가 불가능하오.”(‘청산’)
이광재 의원은 왜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스스로 끊었을까?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해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군대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었을까? 이 의원은 지난날 왜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산재로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유전게이트 연루 여부를 놓고 곤혹을 치르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대학 시절 손가락 절단한 것을 놓고 또 다시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였다.
이광재 의원은 19일 자신의 홈페이지(www.yeskj.or.kr)에 “앞뒤의 문맥, 그리고 시대 상황을 다 버리고 이것을 군 기피를 위한 단지라고 비난한다면 그 비난은 달게 받을 것”이라면서도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 손가락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암울한 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배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손가락을 잘라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 혈서를 썼다”고 해명했다.
이 의원의 부인도 이날 이 의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더라도 그의 단지 부분에 대해서 오늘의 잣대로 아무렇게나 언급하시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나도 손가락을 버렸습니다. 그 시대 겪지 않은 사람 이해 못할 것”
인터넷에선 찬반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의원 해명 글에는 하루새 160여건의 댓글이 붙었고, 게시판에도 700여건의 주장 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 의원과 같은 세대로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누리꾼들은 “나도 같은 이유로 손가락을 버렸다”거나 “단지한 사람을 보았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누리꾼 ‘함께’는 “같은 상황과 번뇌 속에서 저 역시 손가락을 버렸다”며 “저 역시 결코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솔직한 해명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블랙리’는 “나도 안기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거의 매일 감시당하고 취직해서는 일본비자도 거부당했다”며 “그 당시 그 일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의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물소뿔’은 “그 시절을 아프게 함께 겪어온 사람으로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 시퍼런 20대의 상처를 누구보다도 이해한다”며 “개인적으로 이광재씨를 지지하지 않지만 이 일이 공격 받는 것을 보면, 마치 제 상처를 헤집어내는 것처럼 아프고 또 아프다”고 말했다.
‘도기천’은 “이광재는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목숨을 구했지만, 군대 가서 의문사 당하고, 스스로 목숨끊고, 분신하고, 고문당해 불구되고, 씻을 수 없는 치욕(군가혹행위)으로 한평생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땅에 수천, 수만”이라며 “손가락조차 자르지도, 감옥을 택하지도 못한 채 군대로 향했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게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예비역’은 “동료 중에 군대가지 않고 단지한 사람도 있었고, 군 입대를 피해 도망치다가 붙잡혀 끌려간 사람도 있었고, 또 아예 감옥살이를 해서 면제받은 경우도 있었다”며 “군대 다녀온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에게 절대로 손가락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잃은 손가락으로, 수배와 도피생활의 두려움과 처참함, 그리고 감옥살이로 군대를 통해서 치러야 할 희생의 대가를 이미 치르고도 남았다”고 말했다.
“왜 하필 오른손 검지를, 뼈속에 피가 흐르는 특이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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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 의원의 단지를 병역회피라고 주장하는 패러디가 인터넷 게시판 등에 떠돌고 있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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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의원의 단지가 군대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누리꾼들은 애국을 위한 수단이 어떻게 단지가 될 수 있었는지, 왜 하필 오른쪽 검지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김재홍’은 “혈서 쓰기 위해 피부에 상처만 내도 되는데 뼈는 왜 자르셨나요? 혹시 의원님은 피가 뼛속으로만 흐르는 특이체질 인가요?”라고 캐물었다.
‘전후파’는 “나라를 위한 단지는 주로 총을 쓸 때 필요한 검지가 아니라 약지나 새끼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는 “ 이 의원과 같은 나이니, 그 시대 상황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며 “군 입대가 두렵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지 않았다면 왜 하필 오른손 검지를 잘라 잡음이 나도록 했느냐”고 비판했다.
‘시민’은 “군대가기 싫어서 손가락까지 자르다니 병역기피 국적포기와 뭐가 다른가”라고 한탄했고 ‘박몽하’는 “시대의 아픔을 팔면 모든 것이 용서 되리라 보느냐”고 항의했다.
“공장에서 짤렸다, 다쳤다” 왜, 당당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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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 의원이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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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이 단지에 대해 처음에 “위장취업한 공장에서 짤렸다”고 해명한 것과 관련해 거짓말 논란도 일고 있다. 이 의원의 떳떳지 못한 대응이 의혹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 의원은 2003년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시절 <동아일보> 기자에게 “85·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돼 인천 부평의 조그만 가내 주물공장에 위장취업해 있을 때 혼자 기계를 다루다가 사고로 손가락이 잘렸다”고 해명했다. 또 이 의원은 2003년 10월 국회 운영위가 실시한 대통령 비서실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이 군면제 이유를 추궁하자 “오른손 손가락이 없어서 안가게 되었고 86년 대학교 때 다쳤다”고 넘어갔다.
이 의원이 단지 이유에 대한 진실를 털어놓은 것은 지난 17대 총선전에 펴낸 <우통수의 꿈>이라는 책에서였다. 이 의원은 “1986년 대학생들의 분신을 보고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혈서를 썼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누리꾼 ‘청산’은 “인천 부평 주물공장에서 기계에 잘렸다고 본인이 밝혔던 지난 변명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해명하지 않으면 진실로 인정하기가 불가능하다”며 “기자까지 직접 그곳 공장이었다던 곳까지 데려가 기계에 잘린 것이라고 했다는 것에 대해서 해명하라”고 말했다.
‘단나들’은 “처음부터 솔직하게 밝혔어도 논란이 되었겠지만, 이런 저런 변명을 하다가 막판에 몰린 생쥐가 되니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쪽 “보수언론 흠집내기 피하려고…”
거짓말 논란에 대해 이 의원쪽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 있을 때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팀을 꾸려 흠집내기를 위해 뒷조사를 하고 다녔다”며 “스스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에 대해 특정 의도를 가지고 뒤를 캐니 한발 비켜 서는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광재 의원은 19일 저녁 다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무엇 때문에 이토록 진실규명과는 거리가 먼 살기 가득한 기사들이 이어지는지 참으로 안타깝다”며 “나는 결점도 많고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고 적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