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 선생의 영정그림(오른쪽)이 동아대 정갑주(60·왼쪽·회화과) 교수의 손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선생의 영정은 후손과 한글학회 등이 보관하고 있는 상반신 사진이 몇 장 남아 있긴 하나 세월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 지난해 봄 선생의 문중 관계자들이 정 교수에게 새 영정 그림을 부탁했다. 이들이 정 교수를 찾은 것은 우리나라 초상화의 1인자로 불리는 아천 김영철(67) 화백의 추천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정 교수는 이들이 들고 온 선생의 오래된 증명사진을 토대로, 선생을 기억하는 문중 관계자 10여명을 여러 차례 만나 선생의 눈썹과 얼굴 형태 등 외모에 관해 세심하게 듣고 기록해가며 1년여에 걸쳐 영정그림을 완성했다. 문중 관계자들의 구술한 모습과 틀리거나 마음에 차지 않아 찢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그리기도 여러 차례였다고 한다.
지난해 예술대학장까지 맡은 그는 주로 밤과 휴일을 이용해, 평소 검은 두루마기에 즐기던 짚신을 신은 채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의 주시경 선생 영정을 완성해냈다. 그림의 크기는 40호(80.3×100.0㎝). 지난달 말 완성된 이 영정은 경남 함안군 칠서면에 있는 선생의 12대조로서 조선시대 최초로 서원을 설립한 주세붕선생 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정 교수는 “주시경 선생의 영정을 그리는 동안 한글학자들의 격려 전화도 많이 받았다”며 “우리나라 역사상 비중이 큰 분의 영정인데다 근거 자료가 부족해 그리는 동안 엄청난 중압감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부산/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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