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2일 광주시내 거리에서 아줌마들이 대형 솥을 걸어두고 밥을 짓는 모습(왼쪽). 지난 15일 양동시장 나눔장터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양동시장 노점상 아줌마들. 오른쪽부터 이영애·오순·강선자·곽미순씨 나경택 전 연합뉴스 기자, 다큐 사진가 김향득씨 제공
‘5·18 29돌’ 항쟁 돕던 양동시장 노점상 아줌마들
그땐 우리 먹을거 없어도 아까운지 몰랐당게
5월단체끼리 아옹다옹, 영령들 볼 면목이 없네 “광주가 이라믄 안 되지라. 80년 5월엔 다들 한맘이었는디….” 5·18 29돌이 임박한 15일 오후 광주 양동시장. 평소 조용하던 시장 안이 왁자지껄했다. 좁은 통로에 80년 5월의 대동세상을 재현하는 나눔장터가 펼쳐졌다. 무대 부근에선 소주·파전·쥐포가 옛날처럼 500원에 팔리고, 천막 아래선 주먹밥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그 틈바구니에 ‘그 때 그 사람들’이 보였다. 5·18 당시 주먹밥을 만들었던 이영애(67)·오순(64)·강선자(63)·곽미순(50)씨. 이들은 29년 전 양동시장에 좌판을 붙이던 억척 아줌마들이었다. ‘학생들이 얻어맞고 송장이 늘어간다’는 소식에 노점을 때려치우고 팔을 걷어붙였다. 몸빼 차림으로 카빈총대신 밥주걱을 들었다. 행여나 소문이 새나갈까 가게 철문을 내리고 주먹밥을 만들어 전남도청으로 보냈다. 세월이 흘러 ‘전설’은 가물가물 해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 터에서 과일과 채소, 튀김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전두환이 서슬이 퍼럴 때는 밥해준 년들 다 죽인다고 했어. 순찰차만 지나가도 가슴이 두근두근 했당게.” 이들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목숨을 바친 사람도 있고, 징역에 끌려간 사람도 많은데 고작 열흘 밥해 나른 일을 갖고 그러냐”며 연방 손사래를 쳤다. 함박지에 가득했던 밥이 바닥날 즈음에야 “그래도 80년엔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후다닥 만들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천천히 만들어도 되니까 참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그해 5월 시장 안으로 쫓겨온 학생들을 돕다가 5·18의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학생들의 울먹임을 듣고 전남도청 앞에 나가 처참한 주검들을 봤다. 자연스럽게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고 의기투합했다. 노점상 120명이 처음엔 쌀을 추렴하다, 나중엔 돈으로 2천원씩을 걷었다.
큰언니인 이씨는 “그 땐 우리 먹을 것도 없었지만 아까운지 몰랐지”라며 “한두 번 밥을 해주니까 이젠 아예 기별이 오더랑게. 점심 때마다 쌀 한 가마씩 찌어 봉고차나 손수레로 보냈지”라고 회고했다. [하니뉴스] 시민군 주먹밥 말던 광주 대인시장서 ‘5월 혼맞이굿’ 80년 5월을 거침없이 풀어놓던 이들은 올해 5월을 꺼내자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들이 이날 양동시장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순간에도 광주에선 5월단체의 갈등이 한창이었다. 한켠에서는 옛 전남도청 별관의 철거와 보존을 두고 5월단체끼리 반목하고 있고, 한켠에서는 5·18기념재단이 회의 장소를 옮겨가며 넉달째 공석인 이사장을 뽑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도청 앞의 농성장에서 5월단체끼리 아웅다웅 싸우고 있더만. 참말로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여.” 5월의 분열에 혀를 차던 양동상인들은 이번에도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았다. 14~16일 사흘 동안 ‘대동 광주’를 꿈꾸는 나눔장터를 꾸렸다. 5월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을 보듬고, 기증받은 물품을 팔아 이웃을 도왔다. 생필품이 부족해 먹을 것을 나누면서도 도둑 하나 없었던 ‘5월 공동체’를 되찾자고 호소했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이러면 영령들한테 면목이 없어. 한발짝씩 양보해야제. 그것이 광주고 민주제 별 거 있간디….”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5월단체끼리 아옹다옹, 영령들 볼 면목이 없네 “광주가 이라믄 안 되지라. 80년 5월엔 다들 한맘이었는디….” 5·18 29돌이 임박한 15일 오후 광주 양동시장. 평소 조용하던 시장 안이 왁자지껄했다. 좁은 통로에 80년 5월의 대동세상을 재현하는 나눔장터가 펼쳐졌다. 무대 부근에선 소주·파전·쥐포가 옛날처럼 500원에 팔리고, 천막 아래선 주먹밥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그 틈바구니에 ‘그 때 그 사람들’이 보였다. 5·18 당시 주먹밥을 만들었던 이영애(67)·오순(64)·강선자(63)·곽미순(50)씨. 이들은 29년 전 양동시장에 좌판을 붙이던 억척 아줌마들이었다. ‘학생들이 얻어맞고 송장이 늘어간다’는 소식에 노점을 때려치우고 팔을 걷어붙였다. 몸빼 차림으로 카빈총대신 밥주걱을 들었다. 행여나 소문이 새나갈까 가게 철문을 내리고 주먹밥을 만들어 전남도청으로 보냈다. 세월이 흘러 ‘전설’은 가물가물 해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 터에서 과일과 채소, 튀김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전두환이 서슬이 퍼럴 때는 밥해준 년들 다 죽인다고 했어. 순찰차만 지나가도 가슴이 두근두근 했당게.” 이들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목숨을 바친 사람도 있고, 징역에 끌려간 사람도 많은데 고작 열흘 밥해 나른 일을 갖고 그러냐”며 연방 손사래를 쳤다. 함박지에 가득했던 밥이 바닥날 즈음에야 “그래도 80년엔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후다닥 만들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천천히 만들어도 되니까 참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그해 5월 시장 안으로 쫓겨온 학생들을 돕다가 5·18의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학생들의 울먹임을 듣고 전남도청 앞에 나가 처참한 주검들을 봤다. 자연스럽게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고 의기투합했다. 노점상 120명이 처음엔 쌀을 추렴하다, 나중엔 돈으로 2천원씩을 걷었다.
큰언니인 이씨는 “그 땐 우리 먹을 것도 없었지만 아까운지 몰랐지”라며 “한두 번 밥을 해주니까 이젠 아예 기별이 오더랑게. 점심 때마다 쌀 한 가마씩 찌어 봉고차나 손수레로 보냈지”라고 회고했다. [하니뉴스] 시민군 주먹밥 말던 광주 대인시장서 ‘5월 혼맞이굿’ 80년 5월을 거침없이 풀어놓던 이들은 올해 5월을 꺼내자 금세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들이 이날 양동시장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순간에도 광주에선 5월단체의 갈등이 한창이었다. 한켠에서는 옛 전남도청 별관의 철거와 보존을 두고 5월단체끼리 반목하고 있고, 한켠에서는 5·18기념재단이 회의 장소를 옮겨가며 넉달째 공석인 이사장을 뽑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도청 앞의 농성장에서 5월단체끼리 아웅다웅 싸우고 있더만. 참말로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여.” 5월의 분열에 혀를 차던 양동상인들은 이번에도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았다. 14~16일 사흘 동안 ‘대동 광주’를 꿈꾸는 나눔장터를 꾸렸다. 5월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을 보듬고, 기증받은 물품을 팔아 이웃을 도왔다. 생필품이 부족해 먹을 것을 나누면서도 도둑 하나 없었던 ‘5월 공동체’를 되찾자고 호소했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이러면 영령들한테 면목이 없어. 한발짝씩 양보해야제. 그것이 광주고 민주제 별 거 있간디….”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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