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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멀쩡한 집 빼앗고 임대주택 가라니…

등록 2009-05-20 21:28수정 2009-05-21 00:02

공영주차장 건설로 보금자리를 잃게 된 임남규씨(맨오른쪽)와 주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장안4동 다세대주택 골목에 모여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공영주차장 건설로 보금자리를 잃게 된 임남규씨(맨오른쪽)와 주민들이 20일 오후 서울 장안4동 다세대주택 골목에 모여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동대문구, 장안동 주택가에 공영주차장 계획
불법거래 막는다며 분양권 대신 임대주택만
임남규(54)씨는 어린 시절 서울 중랑천변 무허가 판자촌에서 10여년을 살았다. 1980년 이 지역이 강제 철거되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중랑구 중화동의 무허가 건물 단칸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82년에는 리비아로 건너가 하루 17시간씩 3년을 꼬박 일했다. 귀국한 뒤에도 그는 치솟는 전셋값에 밀려 스무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그러다 91년, 동대문구 장안4동에 30㎡짜리 다세대주택을 마련했다. 20여년의 노동으로도 집값을 다 치를 수 없어 은행 대출(1700만원) 끝에 이뤄낸 일이었다. 임씨는 이 집에서 17년 동안 살면서 세 살, 한 살이던 아이들을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키웠다. 9평짜리 집은 4인 가족이 지내기에 좁지만, 임씨는 “내 집 있어서 집 걱정 없이 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집을 잃게 생겼다. 동대문구가 장안4동 128번지 일대에 공영주차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임씨와 같은 처지의 65가구 주민들은 집을 내주는 대가로 구로부터 평균 8000만원의 보상비와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는다. 임씨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다. 보상비가 시세보다 5천만~6천만원 정도 낮은데다, 무엇보다 아파트 분양권을 주던 과거와 달리 임대주택 입주권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주민들은 19일 “‘아파트 특별분양권(딱지)’이 불법 거래되면 단속해야지, 멀쩡한 집을 빼앗고, 임대주택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은 서울시의 관련 ‘규칙’ 개정 때문이기도 하다. 시는 2007년 12월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 규칙’을 고쳤다. “이주 철거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특별분양권이 불법 거래돼 주택시장 혼란의 원인이 된다”며, 공익사업을 위해 주택을 수용할 경우, 아파트 분양권 대신 임대주택 분양권을 주도록 한 것이다.

서울시는 더욱이 2007년 동대문구의 잇따른 주차장 설치 승인 요청을 ‘건물 상태와 주거 여건이 양호하다’며 반대하다, 2008년 2월에는 태도를 바꿔 조건부 승인을 내주었다. 구의 끈질긴 의뢰에 대해 서울시는 “보상비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세우라”는 단서를 붙여 승인한 것이다.

임씨는 허리마저 다쳐 더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조만간 한평생 벌어 마련한 집에서 쫓겨나 임대주택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람이 사는 집을 빼앗는 동대문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동대문구는 “장안4동 지역 주차장 확보율이 매우 낮아 공영주차장이 필요하다”며 “도시계획사업은 주민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계획대로 시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사업 강행 의사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주원 나눔과 미래 지역사업국장은 “공익사업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재산을 함부로 평가해서 수용하거나, 사업비를 낮추기 위해 ‘보상비 최소화 대책’ 등을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실성 있는 주거 대책을 촉구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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