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헌 소장 학자상' 주인공 박정현씨
그의 손은 검고 거칠다. 평생 사과 농사를 지은 농부의 삶을 잘 보여준다.
올해 아흔세살의 박정헌(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사진)씨. 지난달 4일 뉴질랜드 웰링턴의 아시아 사회심리학회 총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박정헌 소장학자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 분야의 연구 실적이 뛰어난 홍콩과 일본의 젊은 학자 2명이 상을 받았다. (<한겨레> 기사 : 이름없는 농부 이름으로 국제학회 ‘박정헌상’ 제정)
수상자와 참석자들은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한국의 농부를 떠올리며 뜨거운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소학교 4학년 때 학비가 넉달째 밀려 학교를 그만둬야 할 처지였어요. 그때 일본인 교장선생님의 부인이 종일 손뜨개질해서 번 돈으로 등록금을 대주셨죠.” 덕분에 그는 고향인 평안남도 평원에서 소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평양에서 유리공장을 하다가 6·25 전쟁이 나자, 그는 형제들과 대구로 피난했다. 칠성시장에서 몇년 동안 지게꾼 일을 해 돈을 모아 과일가게를 냈다. 돈이 더 모이자 아예 경북 영천의 한 사과밭을 사 사과를 키우기 시작했다.
박씨는 사과 농사로 자식 5남매를 키웠다. 이 중 3명은 대학교수가 됐다. 수백명에 이르는 또다른 ‘자식들’도 길러냈다.
소학교 때 받은 은혜를 세상에 갚고 싶었다. 1970년대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평원 장학회’를 만들어 대구의 중·고교 50곳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해마다 영천의 중·고교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20명의 등록금을 댔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시골 교회에 슬그머니 오르간을 갖다 놓은 적도 있다. 딱한 사연의 이웃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성금을 남몰래 내놓았다.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차비와 밥값을 챙겨주곤 했다. 또 50년째 해마다 음력 7월29일(북에 두고 온 아버지 생신)에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사과나무를 잘 대접하면 좋은 사과가 열리듯 세상을 대접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사회 곳곳에 진출한 이들이 “감사하다”며 안부를 전해올 때가 가장 기쁘단다. ‘박정헌 소장학자상’은 딸인 박영신(47·교육학) 인하대 교수가 만들었다. 지지난해 “좋은 데 쓰라”며 아버지가 준 1천만원을 어디다 쓸까 고민하다가 돈을 ‘아버지 방식대로’ 쓰기로 했다.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도 전적으로 찬동했다. 그들은 스승의 날 행사비 등을 아껴 상금에 보탰다. “아버지의 삶을 소개하고 아버지의 정신을 담은 학회상을 제안하자 참석한 심리학자들이 상의 의미에 깊이 공감해 상을 만들게 됐다”고 20일 박 교수는 말했다. 상금이래야 500달러씩밖에 안 되지만, 국경을 넘은 ‘박정헌 정신’은 돈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아흔을 넘기면서 박씨는 농사일에서 손을 뗐다. 벌이가 없어 이제 장학금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요즘 또다른 ‘장학금’을 내놓는다. 매일 아침 마을 놀이터 담 위에 곡식 한줌씩을 놓아둔다. “배고픈 새들이 와서 먹고 가라고.” 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소학교 때 받은 은혜를 세상에 갚고 싶었다. 1970년대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평원 장학회’를 만들어 대구의 중·고교 50곳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해마다 영천의 중·고교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20명의 등록금을 댔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시골 교회에 슬그머니 오르간을 갖다 놓은 적도 있다. 딱한 사연의 이웃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성금을 남몰래 내놓았다.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차비와 밥값을 챙겨주곤 했다. 또 50년째 해마다 음력 7월29일(북에 두고 온 아버지 생신)에 마을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사과나무를 잘 대접하면 좋은 사과가 열리듯 세상을 대접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사회 곳곳에 진출한 이들이 “감사하다”며 안부를 전해올 때가 가장 기쁘단다. ‘박정헌 소장학자상’은 딸인 박영신(47·교육학) 인하대 교수가 만들었다. 지지난해 “좋은 데 쓰라”며 아버지가 준 1천만원을 어디다 쓸까 고민하다가 돈을 ‘아버지 방식대로’ 쓰기로 했다.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도 전적으로 찬동했다. 그들은 스승의 날 행사비 등을 아껴 상금에 보탰다. “아버지의 삶을 소개하고 아버지의 정신을 담은 학회상을 제안하자 참석한 심리학자들이 상의 의미에 깊이 공감해 상을 만들게 됐다”고 20일 박 교수는 말했다. 상금이래야 500달러씩밖에 안 되지만, 국경을 넘은 ‘박정헌 정신’은 돈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아흔을 넘기면서 박씨는 농사일에서 손을 뗐다. 벌이가 없어 이제 장학금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요즘 또다른 ‘장학금’을 내놓는다. 매일 아침 마을 놀이터 담 위에 곡식 한줌씩을 놓아둔다. “배고픈 새들이 와서 먹고 가라고.” 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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