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씨가 20일 서울 환경재단 레이철 카슨룸에서 군사독재시절 자신의 석방을 도왔던 일본 엠네스티 회원들을 31년 만에 만나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그때 그 사람들 높은사람 됐다니…”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됐다는 소식을 듣고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제는 고통받고 있는 다른 나라의 민주화 인사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1970년대 대표적인 반유신 민주화운동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구속자를 비롯한 양심수들을 지원했던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일본지부 회원 등 9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을 이끌고 방한한 앰네스티 일본지부 한국·조선팀 회원 쓰네나리 가즈코(76)는 20일 낮 서울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서 민청학련 관계자들을 만나 “민주화가 많이 진전된 한국이 자랑스럽다”면서도 “할 일을 다하고 있냐”는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이젠 다른나라 민주화 위해 어떤 일 하나” 쓰네나리의 한국 민주화운동 돕기는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19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 세계총회에서 윤현 한국지부 대표를 만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듬해 민청학련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죄 없이 갇힌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고통에 동참하자며 회원 9명이 매달 1만엔씩 모았다.” 그의 한국 민주화인사 돕기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한국 정치범 돕기 모금과 바자회를 열어 7년간 모두 600만엔을 한국으로 보냈다. 이 돈은 양심수들의 영치금과 변호사 비용 등으로 쓰였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장영달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양관수 고려대 객원교수 등은 “민주화를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는 “수감됐을 때 쓰네나리가 일본에서 보낸 책들을 보며 환경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며 “환경운동가가 된 것도 이분들 덕택”이라고 말했다. 이강철 수석은 “나 또한 이제야 첫 월급을 받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소홀한 부분이 많았다”며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돕기 위해 좀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앰네스티 일본지부 회원들은 이날 오후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김지하 시인을 만나 31년 만에 회포를 풀었다. 김씨를 만난 회원들은 “한때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했다”며 안부를 물었고, 김씨는 “‘오적’ 필화 사건 때부터 도와준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답했다. 쓰네나리 등은 이어 저녁에는 서울 언론회관에서 열린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한 일본인사 초청 한마당’에 참석해 박형규 목사,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 100여명의 민청학련 관계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민주화라는 목표를 위해 매진해 왔지만, 민주화를 어느 정도 실현한 다음 추구할 비전은 마련했는가? 요즘 민주화 인사들은 과거청산을 얘기하지만, 그 다음의 비전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일본처럼 철학 없는 국수주의에 매몰되는 불행이 닥칠 수 있다.” 쓰네나리의 고언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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