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들머리에서 조문을 마친 시민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해/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빈소 주변 삼삼오오 모여 즉석 시국토론 풍경
넥타이맨 40대 ‘386’들 20년만에 재회 악수
“노 전 대통령이 흩어졌던 우리 모이게 했다”
넥타이맨 40대 ‘386’들 20년만에 재회 악수
“노 전 대통령이 흩어졌던 우리 모이게 했다”
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린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뙤약볕을 피해 노 전 대통령 사저 앞 구멍가게 천막으로 모여든 10여명의 조문객들은 즉석 ‘시국토론’을 벌였다.
부산에서 바둑기원을 한다는 박경복(75)씨는 “대한민국 역사상 언론 권력에 맞서 싸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며 “그의 죽음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살인”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곁에 있던 이찬복(79·경남 마산시 오동동)씨가 “싫든 좋든 이 대통령은 우리가 뽑지 않았느냐”고 되받은 뒤, “현 정권에 대한 대항 세력이 너무 힘이 없다. 젊은 것들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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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봉하마을 곳곳에서는 이처럼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벌이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조문을 마친 시민들은 분향소 옆에 설치된 조문객용 천막과 노 전 대통령이 세상과 이별한 사저 뒤편 봉화산 부엉이바위 앞 등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한 명의 의견 발표가 즉석 시국토론회로 발전하기도 했다. 한 시민이 현 정부를 성토하는 연설을 하면 곧 주변에 수십명이 몰려들고, 다른 시민이 발언을 하는 식이다.
봉하마을은 1987년 거리에서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며 노 전 대통령과 어깨를 걸고 싸웠던 ‘386세대’들의 해후의 장이기도 했다. 2002년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함께 만든 뒤, 이라크 파병·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문제 등으로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려 연락을 끊거나 등을 돌리기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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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밤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선 넥타이를 맨 40대 중반의 남자 4~5명이 반갑게 악수를 했다. 87년 6월 항쟁 때 부산의 거리시위를 주도했던 부산대 학생회 간부들이었다. 6월 항쟁 당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 서면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친 지 20여 년 만의 재회다.
이들은 저마다 가슴을 쳤다. 공무원인 여아무개(44)씨는 “노 전 대통령이 결국 각계로 흩어졌던 우리를 모이게 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몸으로 실천했던 그분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송구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약국 문을 일찍 닫고 경남 거제에서 왔다는 김아무개(45)씨는 “참여정부의 잇단 실정에 실망해 정치에 관심을 끊고 조용히 살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고는 그동안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탄식했다.
반성은 곧 결집과 연대로 이어졌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손동호(44)씨는 “민주정부가 참여정부로 꽃을 피운 뒤 진보진영이 갈라지면서 보수정권 탄생의 빌미가 됐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민주세력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노 전 대통령의 시대정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는 이들도 많았다. 김은정(42·경남 창원)씨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노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은 사실을 아이에게 바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교 기념일을 맞아 학교에 가지 않은 딸을 데리고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김씨의 초등학교 3학년 딸 채원양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해/김광수 정유경 권오성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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