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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삶은 유한한 것…더 밝게 살아야죠

등록 2009-05-29 18:44수정 2009-05-29 20:18

환경운동가인 정상명씨
환경운동가인 정상명씨
산문집 ‘꽃짐’ 펴낸 정상명 풀꽃평화연구소 대표
‘삶의 밑그림은 슬픔입니다.’

그의 첫 산문집 <꽃짐>(이루 펴냄)을 열면 맨 먼저 등장한 색연필 그림 상단에 이 말이 씌어져 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육십 나이에도 소녀 같은 분위기의 그는 조용조용 말했다. “생명이 유한해서 누구나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 목숨에 정해진 길이가 있다는 것은 슬프다. 쓸쓸함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어진 말이 이랬다. “그래서 더 신나게 밝게 기분좋게 살아야 한다.”

큰딸 ‘풀꽃’ 잃고 환경단체 ‘풀꽃세상’ 일궈
“사람들 마음속 콘크리트 깨고 싹 틔웠으면”

화가요, 환경운동가인 정상명(사진)씨. 1999년 3월 그가 소설가 최성각씨 등과 함께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만들고 환경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녹록찮은 그 바닥에서 배겨 내기 힘들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출범 4년 만에 회원이 4천명을 넘었다. “흔히 ‘시민없는 시민단체’라는 말들을 하지만 우리는 시민으로 가득찬 시민단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사이트에 들어와 서로 대화하며 위로받고 행복해 했다.” ‘풀꽃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회원끼리 자주 만나고 유대감도 강한 풀꽃세상은 새로운 개념의 환경운동이다.

“거부와 항의의 운동방식과는 달리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려는 부드러운 공감의 운동”이 바로 풀꽃세상 운동방식이다. “혁명적 발상”이라고 평가받은 ‘풀꽃상’이 상징적이다. 새나 돌멩이, 꽃과 길, 자전거 등 사람 아닌 자연물을 정해 풀꽃상을 ‘드린다.’ “말이란 게 참 중요하다.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마음 자세도 달라진다. 우리는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드린다.” 2대 풀꽃상은 댐 건설 소동으로 위기에 처했던 동강 텃새 비오리에 드렸고, 7대 수상자는 지렁이였다. 그것은 놀라운 효과를 낳았다. “자연물도 존재감을 갖게 됐다. 회원집 아이들은 길바닥에 뒹구는 지렁이를 보면 나뭇잎 등으로 가만히 싸서 풀섶으로 옮겨준다. 맨손으로 그렇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풀꽃’은 큰 딸아이 이름이다. 성이 천씨여서 말그대로 ‘천 개의 풀꽃’(천풀꽃)이었다. 동생 이름은 ‘천 개의 샘’(천샘). 1998년 12월 어느날 줄리어드음대 유학중 방학 때 잠시 다니러왔던 큰딸이 불의의 화재로 정씨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한줌의 재가 돼버렸다. 사흘 뒤 춘천 의암호 너머 퇴골에 있는 집(자두나무집) 옆에 스무 살 딸을 묻고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전과 다르게 살겠다. 이 세상을 밝음으로 가득 채우는 데 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풀꽃세상은 비탄 속에 한 생명을 묻고 그렇게 탄생했다. 인터넷으로 시작한 풀꽃세상이 뿌리를 내린 첫 4년간 두 사람은 ‘왕풀’과 ‘그래풀’로 불리며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한 채 사이트 운영에 힘을 쏟았다. 지금은 회원들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fulssi.or.kr) 을 자발적으로 꾸려가고 있고, 정씨는 그 회원의 한 사람으로 부설조직인 ‘풀꽃평화연구소’(naturepeace.net) 대표를 맡고 있다.

<꽃짐>은 뛰어난 감수성과 승화된 깊은 슬픔으로 그런 사연들을 기록하고 보듬었다. 서울 신촌과 퇴골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정씨는 “사람들 마음속이 마치 콘크리트 같아서 물도 스며들기 어려워 보인다”며 “우리 운동은 콘크리트를 깨서 흙이 드러나고 거기에 풀씨 하나 날아가 싹을 틔우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던 딸 풀꽃은 홀로 땅에 떨어져 수많은 회원, 말 그대로 천 개의 풀꽃으로 환생했다. 그 아이의 영세명이 ‘다시 태어난 여인’이라는 뜻을 지닌 레나떼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하루 전인 지난 28일 정씨는 “그의 삶을 생각하고 슬퍼서” ‘근조’가 씌어진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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