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3770원”…노동계와 갈등 커질 듯
경영계가 경기 악화를 이유로 내년 최저임금 요구안을 현행 4000원(시간급 기준)에서 3770원으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뒤로 경영계가 최저임금 삭감안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최저임금 수준 현실화’를 촉구해온 노동계와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2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에 적용할 시간당 최저임금액으로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5150원과 3770원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노동계가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인 반면, 경영계가 내놓은 인상률은 -5.8%다. 지난해 인상률은 6.1%였다. 다음달 5일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앞서 전날 밤 최저임금위원회의 경영계 쪽 위원 9명은 이례적으로 최저임금 삭감안을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경영계에선 경제 5단체와 중소기업 및 업종 대표, 서울택시조합 이사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팀장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었다”며 “2000년대 들어 최저임금의 평균 인상률이 10.1%로 지나치게 많이 인상된 만큼 삭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외환위기 직후엔 최저임금 삭감안 대신 동결안을 제시한 바 있어, 이번 안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런 경영계의 태도에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은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법으로 정하자는 것인데, 이를 깎자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20년간 최저임금은 6.91배 인상됐고 일반 노동자의 임금 총액은 6.27배 인상되는 등 인상폭에서 별반 차이가 없어 소득분배 구조 개선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저임금연대는 또 경제위기일수록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려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거꾸로 가려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최근 미국이 10년간 제자리였던 최저임금을 2011년까지 45% 대폭 인상하기로 했고, 유럽 각 나라들도 내수 진작과 경기 선순환 등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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