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진 검찰총장이 3일 낮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임 총장은 이날 오전 김경한 법무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임채진 검찰총장이 지난달 23일에 냈다가 잠시 보류된 사직서를 3일 다시 제출한 것은, 검찰 내부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책임의 상당 부분을 떠안아야 하는 검찰은 지난 2일 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사실상 ‘벼랑 끝’에 몰렸다. 전 정권에 대한 편중·기획수사라는 비판을 희석시킬 ‘반전 카드’로 준비한 천 회장 수사마저 부실 수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천 회장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오랜 친분 관계를 바탕으로 돈거래를 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천 회장과 그의 가족 등을 샅샅이 훑는 저인망식 수사를 진행했다.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수사 자체는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천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으로써, 지금껏 검찰이 강조했던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날 임 총장이 사직서를 다시 낸 데는 천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큰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임 총장은 지난 23일 사직서를 낸 뒤 “용퇴를 하더라도 검찰 조직을 위해 이번 사건을 모두 마무리한 뒤에 물러나야 한다”는 주변 참모들의 의견을 수용한 바 있다. 임 총장은 길어야 보름 정도면 수사를 마무리짓고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 회장의 영장기각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조은석 대검 대변인은 이날 “수사와 관련된 참고인들도 이젠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한편에선 책임론 공방이 더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임 총장이 검찰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결심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임 총장의 사직서 제출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정부의 사태 수습 계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하고 있는 법무장관·검찰총장 파면 요구에 맞서, 순차적인 퇴진으로 여론을 수습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김경한 법무장관이 이미 구두로 정정길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일단 반려해 놓은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설명은 청와대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물갈이’를 이미 구상해 놓고, 어떤 식으로 사태 수습과 연동시키고 어떤 모양새를 갖출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2002년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수사관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사망했을 때 당시 김정길 법무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이 동반 사퇴한 전례가 있다.
다만, 임 총장이 이날 개인 결단으로 공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함에 따라 청와대가 국정 쇄신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었던 내각 개편의 일정과 범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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