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철거반원 사망’ 수사기록·증언
게임동호회 통해 모집…영문 모른채 ‘전투’ 투입
안전대책없이 “무조건 뚫어라”…경찰은 뒷짐만 “우리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무방비로 전쟁터로 내몰렸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오산세교지구 철거 용역반원 사망 관련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지난달 16일 경기 오산 철거현장에 거의 무방비로 내몰린 철거용역반원 43명 가운데 30여명, 부상자 6명 가운데 4명이 단순 아르바이트 일용직이었다. 이들은 ‘화염병 등을 던지면서 반항하는 철거민들의 반발을 무시한 채 철거를 강행하려한 주공과 업체의 무모한 진입과 경찰의 수수방관’에 분통을 터트렸다. 전쟁터로 내몰린 ‘알바들’=철거업체는 서울의 ㅂ사로 정식 직원은 13명. 나머지 30여명은 인터넷 게임동호회 등을 통해 하루 전날 모집됐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오산 철거 현장에 사고 당일인 16일 처음 도착한 뒤 2시간여만에 바로 ‘전투’ 현장에 투입됐다. 대학 휴학생인 김아무개씨(23)는 “인터넷 게임동호회에서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아무개(23)씨는 “16일 오전 11시 현장에 도착해 안전모를 받은 뒤 진입 방법을 듣고 오후 1시30분에 투입됐다”며 “무조건 뚫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ㅂ사 정식 직원인 이아무개(20)씨조차“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했다. 일용직인 이들이 받기로 했던 하루 일당은 5만원이었다. 경비업체가 주공에서 받기로 한 12만원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안전대책도 없었다=주공이 이날 준 안전도구는 안전모와 방패, 그리고 개인 소화기와 10여켤레의 용접용 장갑이 전부였다. 용역업체 대표 황아무개(35)씨는 “당일 오전 7시 주공 쪽에 불연장비를 요청하고 외곽경비로 220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투입 인원은 43명이 전부였다. 또 이들이 건물 진입 때 머리 방패로 삼은 것은 5mm 두께의 베니어합판과 매트리스였다. 일용직인 김아무개(23)씨는 “화염병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너무 무모했다”고 말했고 정식 직원 이씨도 “왜 그렇게 무리한 진입을 시도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도, 법도 무용지물=이들은 16일 오후 1시30분과 오후 3시40분 등 모두 2차례 철거민들의 농성 현장에 진입하려고 시도했다. 이 사이에 철거민들의 무기 소진을 위해 진퇴가 거듭됐고, 그때마다 화염병과 골프공이 날아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끝내 한명은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에 불타 숨졌다. 일용직 김아무개(21)씨는 “상황이 심각했는데도 경찰은 왜 멀리서 불구경 하듯 보고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이 경비용업업체는 철거 착수 24시간 전에 경비원 배치를 신고하게 돼 있는 경비업법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당일 현장에는 경비지도사도 없었으며, 해당 업체는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안전대책없이 “무조건 뚫어라”…경찰은 뒷짐만 “우리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무방비로 전쟁터로 내몰렸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오산세교지구 철거 용역반원 사망 관련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지난달 16일 경기 오산 철거현장에 거의 무방비로 내몰린 철거용역반원 43명 가운데 30여명, 부상자 6명 가운데 4명이 단순 아르바이트 일용직이었다. 이들은 ‘화염병 등을 던지면서 반항하는 철거민들의 반발을 무시한 채 철거를 강행하려한 주공과 업체의 무모한 진입과 경찰의 수수방관’에 분통을 터트렸다. 전쟁터로 내몰린 ‘알바들’=철거업체는 서울의 ㅂ사로 정식 직원은 13명. 나머지 30여명은 인터넷 게임동호회 등을 통해 하루 전날 모집됐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오산 철거 현장에 사고 당일인 16일 처음 도착한 뒤 2시간여만에 바로 ‘전투’ 현장에 투입됐다. 대학 휴학생인 김아무개씨(23)는 “인터넷 게임동호회에서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아무개(23)씨는 “16일 오전 11시 현장에 도착해 안전모를 받은 뒤 진입 방법을 듣고 오후 1시30분에 투입됐다”며 “무조건 뚫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ㅂ사 정식 직원인 이아무개(20)씨조차“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했다. 일용직인 이들이 받기로 했던 하루 일당은 5만원이었다. 경비업체가 주공에서 받기로 한 12만원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안전대책도 없었다=주공이 이날 준 안전도구는 안전모와 방패, 그리고 개인 소화기와 10여켤레의 용접용 장갑이 전부였다. 용역업체 대표 황아무개(35)씨는 “당일 오전 7시 주공 쪽에 불연장비를 요청하고 외곽경비로 220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투입 인원은 43명이 전부였다. 또 이들이 건물 진입 때 머리 방패로 삼은 것은 5mm 두께의 베니어합판과 매트리스였다. 일용직인 김아무개(23)씨는 “화염병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너무 무모했다”고 말했고 정식 직원 이씨도 “왜 그렇게 무리한 진입을 시도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도, 법도 무용지물=이들은 16일 오후 1시30분과 오후 3시40분 등 모두 2차례 철거민들의 농성 현장에 진입하려고 시도했다. 이 사이에 철거민들의 무기 소진을 위해 진퇴가 거듭됐고, 그때마다 화염병과 골프공이 날아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끝내 한명은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에 불타 숨졌다. 일용직 김아무개(21)씨는 “상황이 심각했는데도 경찰은 왜 멀리서 불구경 하듯 보고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이 경비용업업체는 철거 착수 24시간 전에 경비원 배치를 신고하게 돼 있는 경비업법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당일 현장에는 경비지도사도 없었으며, 해당 업체는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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