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수사단계 보도 자제’ 언론계 합의 고민할 때

등록 2009-06-05 13:54

30일 오후 3시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이 대검청사별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수사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30일 오후 3시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이 대검청사별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수사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재판절차 시작 뒤 보도’ 공동원칙 세워볼만
유명무실 ‘피의사실 공표 금지’ 재정립 필요
최소한 검찰정보 검증보도 반드시 병행해야
ㄱ신문사의 대검찰청 출입기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는 검찰은 ‘여론재판’으로 몰고 가려 언론을 이용했고, 언론은 검찰 의도에 휘말렸다”고 고백했다. ㄴ신문사 기자도 “검찰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로 에둘러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특종에 목마른 언론은 검찰이 흘리는 정보를 받아쓰기에 바빴다”고 털어놨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언론 책임론’이 거세게 일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자극적으로 기사화할 수밖에 없는 ‘속보 경쟁의 맹점’과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의존해 ‘수사 단계에 집중하는 보도 관행’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놓고 현업 언론인들과 언론학자들은 “검찰과 언론의 공생관계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박연차 대질심문 거부’ 등 범죄 사실과 무관한 정보까지 의도적으로 흘렸고, 특종·속보 경쟁을 벌이는 언론들은 ‘검찰 소스’를 경쟁적으로 받아쓰며 확산시켰다는 얘기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검찰이 100% 신뢰할 만큼 투명하지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언론은 피의자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며 검찰 정보를 검증하는 작업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계 전체가 ‘검찰의 입’에 의존한 속보경쟁 풍토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ㄷ신문사 대검 출입기자는 “조간·석간·방송이 서로 물먹이고 물먹으면서 불확실한 정보라도 먼저 쓸 수밖에 없는 속보 보도 관행을 심층·탐사보도로 바꾸지 않는 한 노 전 대통령 사건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속보 경쟁 체제를 벗어나려면 ‘공개된 판결 정보’보다 ‘숨어 있는 수사 정보’ 캐기에 역점을 맞춘 취재 시스템 재고가 불가피하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법조 담당 기자의 다수를 ‘선고 후 보도’라는, 비교적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법원 대신 수사 단계에서 보도가 쏟아지는 검찰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언론 범죄보도의 쟁점과 과제’)에서 “수사 단계에 치중된 현행 보도 관행을 공판 절차와 판결 이후 단계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영국에서처럼 ‘기소 이전 단계에서 추측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언론계 전체가 세워나가는 ‘합의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검찰과 언론의 유착 고리인 ‘음성적 피의사실 공표’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도 관건이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는 “검찰은 독재 시절부터 피의사실 공표란 방식으로 혐의가 없는 이들까지도 판결 전에 이미 범죄자로 만들어냈고, 언론은 이를 토대로 ‘확보 가능한 최선의 정보’가 아닌 ‘이용 가능한 최선의 정보’로 기사를 쓰는 우를 범해왔다”고 비판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형법 제125조는 2005년 이래 검찰 접수 사건 116건 중 한 건도 기소하지 못했을 만큼 규범력을 상실한 상태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기본적으로 금지하되,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한해 대변인이나 공보관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밝힐 수 있으나 비공식적으로 정보를 흘려서는 안 된다’ 등의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가 “참여정부 때 추진됐다가 현 정부에서 거의 원상 복구된 기자실의 폐쇄적 운영 문제나 브리핑제도 활성화 문제를 다시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별 언론사가 내부 보도준칙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 인사들까지 참여시켜 취재 원칙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기구를 구성·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ㄱ신문사 기자는 “기구나 준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명하게 확인될 때까진 쓰지 않겠다’는 각 언론사의 결의와 의지”라며 “한 언론사만이라도 상업적 속보·특종 경쟁에 얽매이지 않고 원칙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라야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일정 부분 개인의 인권 침해를 피할 수 없다’는 시각을 경계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사건에서 알권리 차원으로 보도했다는 많은 부분은 ‘정말 알아야 하는 정보’보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였다”고 지적했다. ‘꼭 전해야 할 정보’와 ‘전하지 않아도 될 정보’ 및 ‘반드시 확인해서 전해야 할 정보’를 구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뜻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