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조사결과 발표…국가기관 첫 확인
“장세동 안기부장 등 두차례 대책회의 열었다”
“장세동 안기부장 등 두차례 대책회의 열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지금의 국가정보원)·청와대·검찰·경찰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조작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이하 진실화해위)는 7일 “박씨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87년 1월14일 박씨가 숨진 뒤 정부가 안기부, 내무부, 법무부, 청와대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최소 두 차례 열어 사건을 은폐·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직적인 은폐·조작 의혹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그 실체의 일부를 국가기관이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의혹을 풀기 위해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호용 전 내무부 장관, 최환 전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1년 넘게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박씨가 숨진 다음날인 1월15일과 16일께 적어도 두 차례에 걸쳐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장세동 안기부장, 김성기 법무장관, 김종호 내무장관, 서동권 검찰총장, 강민창 치안본부장, 김윤환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 얘기를 누가 믿겠냐’고 말한 기억이 있다”며 “(회의에는) 나하고 법무장관, 검찰총장, 치안본부장이 나왔고 내무장관도 나온 것 같다”고 진술했다. 장씨는 이어 “경찰이 보호본능에서 엉터리 발표를 해서 사건이 복잡하게 됐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뒤 다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가졌다”며, 사건 수습을 위해 다시 한번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밝혔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특히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른 치안본부가 담당하도록 수사 주체를 교체하고 △그해 2월 이후, 고문 당시 공범이 3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 개입했음을 당시 검찰 수사진 등을 통해 확인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김준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검찰은 직접 수사에 착수하고도 외압에 의해 가해 주체인 치안본부에 수사를 넘기는 등 수사권 독립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사건의 은폐와 조작에 관여하고 검찰 수사를 방해한 관계기관 대책회의 참석자들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철(당시 23·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씨는 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서 한 대학생 수배자의 소재를 추궁당하며 물고문을 받고 숨졌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김준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검찰은 직접 수사에 착수하고도 외압에 의해 가해 주체인 치안본부에 수사를 넘기는 등 수사권 독립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사건의 은폐와 조작에 관여하고 검찰 수사를 방해한 관계기관 대책회의 참석자들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철(당시 23·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씨는 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서 한 대학생 수배자의 소재를 추궁당하며 물고문을 받고 숨졌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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