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대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중국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시국선언이란 형식으로 한국 정부를 향해 의견을 밝히기는 처음이다.
베이징대 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21명은 9일 ‘아름다운 삶을 향해 희망 하나 보태며’란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내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자 정부와 집권여당, 보수언론이 일제히 국민화합을 외치고 있으나, 진정한 반성과 사과, 환골탈태의 노력이 없는 화합은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외면한 채 현상을 유지하려는 눈가림일 뿐”이라며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어 “현 정부의 ‘실용정치’는 자신의 도덕적 결함을 은폐하고, 무모한 경쟁심을 자극해 가시적 성과와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허울좋은 정치적 구호일 뿐”이라며 △독단적인 국정 운영 중단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 포기 △공권력을 앞세운 강압통치 중단 △사상과 표현, 집회와 결사의 자유 보장 △이른바 ‘MB악법’ 입법 추진 중단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현 정부는 대북관계를 대립적으로 몰아가며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민생과 민족에 기초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현 정부는 각계에서 제기하는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집권여당은 색깔논쟁을 부추기며 건전한 여론 형성과 토론을 가로막고 대립만을 조장하고 있다”며 “힙겹게 이뤄낸 초보적 민주주의마저 과거로 되돌리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시국선언문에는 베이징대 철학과 석·박사 과정 한국인 유학생 31명 가운데 21명이 참여했다. 서명에 참여한 신창우(39)씨는 “4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6명은 시국선언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베이징대에서 연구생 과정을 밟고 있는 다른 한국인 유학생들도 시국선언을 내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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