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세청장 오욕의 역사
권력 눈치보기·인사권 남용
‘인물’보다 ‘제도’로 고쳐야
정부의 굳은 의지가 ‘관건’
‘인물’보다 ‘제도’로 고쳐야
정부의 굳은 의지가 ‘관건’
최근 3년 새 이주성(15대)·전군표(16대)·한상률(17대) 등 세 명의 수장이 잇따라 비리 혐의로 중도 낙마한 국세청 조직은 안팎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청장들마다 겉으로는 인사청탁 금지와 투명행정을 부르짖었음에도 정작 뒤로는 부하직원들한테서 상납을 받고 자신들의 인사로비를 위해 정치권 줄대기에 나선 터라, 하위직 직원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분노는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간 국세청 조직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고질적 병폐로는 청장의 ‘정권 입맛 맞추기’와 ‘인사권 남용’이 꼽혀왔다. 이러다보니, 청장 스스로 불행한 끝을 맞게된 경우도 수두룩하다. 안정남(12대), 손영래(13대) 청장은 각각 재임 중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포탈 혐의가 드러나거나, 썬앤문그룹과 에스케이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났다. 15대 이주성 청장은 프라임그룹으로부터 대우건설 인수로비 명목으로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가 구속됐고 16대 전군표 청장은 부하직원한테서 상납을 받은 게 밝혀져 재임 중 첫 구속이라는 오욕을 남기기도 했다. 전임 한상률 청장(17대) 역시 그림상납 로비와 청탁성 골프회동으로 물의를 빚은 후 자진사퇴했다가 ‘박연차 리스트’ 수사 도중 돌연 ‘도피성 출국’을 한 상태다.
이처럼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사정기관의 속성상 정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데다 청장 자신은 그 대가로 내부 인사권을 독점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평가가 많다. 참여정부 시절 지방청장을 지낸 한 인사는 “국세청장 임명 때 출신이나 정권 실세들과의 친분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됐고 그러다보니 막상 청장에 올라서는 ‘자기 사람’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조직을 병들게 했다”고 말했다. 이해관계로 한데 얽힌 패거리 문화가 뿌리깊고 인사 때마다 각종 투서가 난무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청장의 사임을 불러온 계기가 된 그림 로비 사건이 공개된 배경에도 인사 문제로 한 청장에 섭섭함을 느낀 국세청내 한 인사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국세청 주변에선 파다하다.
이 때문에 이제는 ‘인물’이 아니라 ‘제도’ 차원에서 국세청 조직과 운영 전반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역시 지난해 말 국정기획수석실 아래 ‘국세청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최근 최종안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국세청 조직 운영 전반을 감시하는 감독위원회를 설치하고 인사위원회를 둬 청장의 인사독점권을 막는 방안, 본청-지방청-세무서로 이어지는 3단계 구조를 본청-세무서의 2단계 구조로 바꾸는 방안 등이 담길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미국 국세청(IRS)을 벤치마킹해 조사청(가칭)을 설치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정작 국세청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세청의 한 과장급 직원은 “더 이상 국세청이 불명예스런 조직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대대적인 조직 개편 과정이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냐”는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부가 얼마만큼 개혁 의지를 가졌는지도 논란거리다. 국세청 출신의 한 인사는 “어차피 국세청 운영은 정권의 정무적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터라,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없는 한 겉치레 행보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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