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청서 집단시위 = 사람 다치게해 치사
집단 항의시위를 벌이다 ‘나가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은 사람과, 사람을 다쳐 숨지게 한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할까? 현행법상 두 사람의 법정형은 징역 3년 이상으로 같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의 집단 퇴거불응죄(제3조 1항)가 형법의 상해치사죄(제259조 1항)와 같은 법정형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폭처법의 불균형에 대한 위헌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대전지법 홍성지원 형사2단독 황문섭 판사는 23일 ‘기간제 여교사 차 심부름’과 관련해 교육청을 찾아가 항의시위를 하며 1시간30분 동안 퇴거 요구에 불응한 혐의(폭처법 위반)로 기소된 전교조 교사 4명의 사건에서 “이들을 징역 3년 이상의 형에 처하도록 한 폭처법 조항은 헌법상 과잉금지·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형법으로 처벌되면 30일 미만의 구류·과료가 가능한 폭행·협박사건부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는 상해·공갈사건 등을 일률적으로 같은 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처럼 불균형한 형법 체계는 법관의 양형 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처법의 형량이 지나치게 무겁고 일률적이라는 비판은 법조계에서 계속 제기돼 왔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는 새벽녘 행인들과 시비가 붙어 근처 호프집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40)씨 사건에 대해 ‘단순 협박만으로 징역 5년 이상의 형에 처하도록 한 폭처법 제3조 2항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또 3월 대전지법은 아내에게 철제 우편함을 던져 찰과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월의 실형이 선고된 홍아무개(36)씨 사건에서 폭처법 제3조 1항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바 있다.
5·16때 만들어 '범죄와의 전쟁' 때 형량 껑충
법조계 "밤에 부부싸움 중 병던져도 징역 5년"
"과잉금지 어긋나" 홍성지원 위헌심판 내기로
폭처법은 야간에 흉기를 들고 협박한 사람은 살인죄와 같은 징역 5년, 상습적으로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존속살해죄와 같은 징역 7년 이상의 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폭처법의 법정형이 불균형해진 데는, 정치·사회적인 배경이 있다. 폭처법은 5·16 쿠데타 뒤 ‘사회기강 쇄신 차원’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된 이후,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개정돼 형량이 크게 높아졌다. 입법자들이 ‘처벌 강도를 높이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폭처법을 손질해 왔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폭처법의 형량이 비현실적으로 높게 정해져 있어, 실제 재판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한밤중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유리병을 던졌다는 이유로 어떻게 징역 5년을 선고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또 “폭처법의 처벌 대상이 되는 범죄는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며 “최근 진행 중인 국회 법사위의 법률 개정 논의나 법무부 산하 형사실체법 개정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형법 체계가 합리적으로 재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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