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로 숨진 고 이상림씨의 아들 이성연씨가 1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빈소에서 영전에 술잔을 올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영안실이 다섯 가족 삶터로
용역 폭력-경찰 연행 반복
“빨리 장례 치르는 게 소원”
용역 폭력-경찰 연행 반복
“빨리 장례 치르는 게 소원”
지난 16일 밤 10시, 전재숙(68)씨 등 ‘용산 참사’ 다섯 가족의 다섯 엄마들은 서울 한강로2가 참사 현장에서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하루 종일의 농성을 마치고 잠자리로 가기 위해서다. 전씨 등이 발길을 옮긴 곳은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의 장례식장. 장례식장 4층의 빈소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이들의 ‘거주지’다.
그렇지만 엄마들은 잠자리에 쉬 들지 못하고 결국 모여 앉아 맥주캔을 땄다. 참사의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술과 거리가 멀었던 엄마들까지 매일 밤 술을 한잔씩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빈소 옆의 작은 방에선 고 윤용헌씨의 작은아들 준기(17·가명)군 등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밤 12시가 넘자 엄마들은 조문객실 탁자 사이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참사 이후 다섯달째, 다섯 가족 12명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차가운 영안실 안에 있는 5구의 주검처럼 유족들의 시간도 얼어붙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 6시 빈소에 상식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장례가 끝나지 않았으니 제를 계속 지내야 한다. 아이들은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씻고 학교에 가고, 엄마들은 상복을 입은 뒤 다시 참사 현장으로 향한다.
현장은 전쟁터다. 철거업체 용역직원들과의 몸싸움으로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김영덕(55)씨는 “눈앞에서 용역들의 폭행이 시작돼도 경찰은 보고만 있고, 유족과 철거민들만 연행되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아이들 교육 문제가 걱정이다. 겨울방학 때 장례식장에 온 아이들은 지금대로라면 이곳에서 여름방학을 맞을 판이다. 고 이상림씨의 손자 형기(15·가명·중3)군은 학교를 마치고 오후 5시께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면 자기 전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기를 가지고 논다. 장례식장 어디에도 조용하게 공부할 만한 공간은 없다.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 올 만도 한데, 형기군은 “할아버지 저녁 상식 드릴 때 혼자 빠지면 다른 형들에게 미안해서” 꼬박꼬박 일찍 온다고 했다.
참사 이후 용돈 한 번 제대로 쥐여준 적 없고, 쌀과 김치 등 음식까지 바깥에서 지원받아 생활하지만, 아이들이 불평 한마디 않는 게 고맙고도 가슴 아프다고 엄마들은 말했다.
가족들은 하루빨리 장례를 치르는 게 소원이다. 장례를 치르는 건 곧 아버지들의 명예회복을 뜻한다. 유영숙(48)씨는 “죄없는 아이들이 ‘테러리스트의 자식’이라는 딱지를 안고 살아가는 걸 어느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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