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기자
국세청이 내부게시판에 한상률 전 청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나주세무서 김동일 계장을 지난주 파면하더니, 16일 검찰에 고소까지 했다. 파면 결정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들끓자 더 강력한 카드로 맞대응한 꼴이다. 국세청이 이런 ‘초강수’를 되풀이하는 까닭은 뭘까?
전국 세무관서에서 일하는 국세청 소속 직원은 모두 2만여명. 요즘 이들에겐 인터넷을 통한 소통 통로가 ‘원천봉쇄’돼 있다. 본청이 내부게시판의 ‘나의 의견’ 난에는 근무시간에 글을 올릴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근무시간에는 정해진 업무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게시판 화면에 떠 있는 ‘나의 의견’과 ‘근무시간 외에만 작성 가능’이라는 문구의 조합은 왠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얼마 전 서울지역 한 세무서에서 일하는 이아무개씨는 내부게시판에 김 계장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자 ‘꼭 그렇게 몰아붙일 필요만은 없는 거 아니냐’는 취지의 단 한줄짜리 댓글을 달았다가 본청의 감찰 담당자에게 불려가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국세청 소통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년 전 국세청의 행적은 전혀 달랐다. 지난해 5월 중순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의 주제는 ‘지시·통제의 관료제 문화에서 열정과 창의, 자율과 책임의 문화로’였다. 당시 회의장에서는 직원들이 무대에 올라 직접 역할극을 시연하기도 했다.
국세청이 요즘 잇따른 ‘무리수’를 두는 데는, 조직의 명예보다 허병익 차장을 비롯한 현재 수뇌부들의 안위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섯달째 청장 공백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칫 외부 출신의 청장을 맞아야 할 상황을 피하려 정권 핵심의 눈치를 살피고, 내부 구성원에겐 기강 잡기에 무리하게 나섰다는 얘기다.
만일 이런 평가가 사실이라면, 국세청 스스로 1년 전에 국민 앞에 한 약속을 보란 듯이 뒤집는 것이다. 국세청이 무리수를 되풀이하면 할수록 결국 조직의 명예와 위상은 더 떨어지고 이참에 국세청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만 되레 힘이 실린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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