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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주민등록증 없이 46년 살았다

등록 2005-05-24 20:31수정 2005-05-24 20:31

오대산서 야산생활 46살 심기택씨 황당사연

심기택(46)씨는 3월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그동안은 출생신고 때의 행정착오로 주민번호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46년 동안 자신을 확인해 줄 아무런 증명서 없이 살았다.

이 때문에 심씨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운전면허 취득에서 은행 계좌 개설, 부동산 매매 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권리마저 행사할 수 없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결혼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심씨가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게 된 데는 시민단체의 도움이 컸다.

출생신고때 행정착오 주민번호 미정
은행 문전박대 병원도 엄두못내
“고교 안보내더니 군대는 가라대요…”

심씨는 1959년 강원도 춘성군(현재 춘천시로 통합) 사북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그가 부여받은 주민번호는 뒷자리가 없는 ‘590229-’가 전부였다. 그의 병적기록표와 예전 호적등본을 보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비어 있거나 ×로 쓰여 있다(사진 참조). 생년월일을 표시하는 앞자리도 이상했다. 59년 2월은 28일까지 있었지만, 심씨는 29일에 출생한 것으로 기재됐다.


툭하면 연행 “간첩이지”

“서자로 태어난데다 9살에 아버지를 잃어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어려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때에야 주민번호가 없어 학교 배정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씨는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인천 부평에서 막노동 생활을 시작했다. 몇년 뒤 징집영장이 날아왔다. 주민번호가 없어 학교에 갈 수 없다더니, 군대에는 끌고 간 것이다. 성년이 되면서부터 심씨는 주민등록증 없는 고초를 본격적으로 겪었다.

“통장을 만들 수도 없었고, 툭하면 불심검문에 걸려 경찰서에 끌려갔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었고, ‘간첩 아니냐’는 말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관공서를 수없이 찾아갔으나 공무원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다. 심씨는 “동사무소에 찾아가 사정을 말했지만 누구 하나 해결 방법을 말해주지 않았다”며 “시청 등에선 법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법원에서는 관공서에서 확인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81년 군에서 제대한 심씨는 산으로 들어갔다.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20여년을 오대산 주변에서 야영 생활로 보냈다. 약초 캐기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조난객을 구하기도 여러 차례였지만, 주민등록증이 없어 겪는 불편함은 여전했다.

“공무원 아무도 안도와줘”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사건 때는 군부대에 끌려가 심문을 받기도 했다. 또 십수년 동안 모은 몇백만원으로 산기슭 움막집을 한채 사려고 했지만 등기를 할 수 없어 곤란을 겪었다.

척추 질환에 우울증, 공황장애가 심해져 2년 전 산을 내려왔지만, 심씨는 병원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건강보험증이 없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말 지인의 소개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전·충청지부의 도움을 얻어 법원에 호적 정정을 신청했다. 59년 2월에는 29일이 없다는 천문연구원의 ‘말일증명서’ 등 10여가지 서류를 내고 서너달을 기다려 올 3월에야 제대로 된 주민번호를 부여받았다.

민변 지원 3월에야 주민증

민변 대전·충청지부 임태영 간사는 “행정처리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 만큼 관청에서 직권으로 호적을 수정했어야 했다”며 “되레 관청에서는 심씨의 호소마저 무시하고 옛날 공무원의 일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미뤘다”고 말했다. 그는 “호적 관청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확인서만 일찍 떼줬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제는 길에서 제복 입은 사람만 봐도 도망가고 싶을 정도다. 국민의 의무라면서 군대까지 보냈지만, 어떤 공무원도 내가 받는 불이익에 대한 설명을 해주거나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지난 삶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 앞으로는 힘없는 국민들을 나라가 잘 보호해줬으면 좋겠다.” 심씨는 몸이 나으면 다시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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