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 간첩활동 도운 혐의…고문·자백강요 드러나
1985년 수사기관의 고문과 협박으로 조작된 ‘배병희·이준호 모자간첩사건’의 당사자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광범)는 10일 작은아버지의 간첩 활동을 도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돼 각각 징역 7년,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은 이준호(60)씨와 그의 어머니 배병희(8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를 한 경찰은 혐의를 부인하는 이씨를 폭행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으며, 이씨가 자백한 내용대로 검사에게 진술하도록 연습을 시켰다”며 “이씨의 자백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씨에겐 ‘말을 잘하면 어머니를 내보내주겠다’고 하고, 배씨에겐 ‘자술서에 쓰여진대로 인정해야 아들과 함께 빨리 나갈 수 있다’며 회유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뒤 “뒤늦게 무죄의 결론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법부의 구성원으로서 마음 아프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판결 직후 이씨는 “그동안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곳도 없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유령 같은 삶을 살았다”며 “이제 억울한 누명이 풀려 가족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와 배씨는 1972년 1월 남파된 작은아버지를 만나 해병대 부대의 국가기밀을 수집하고, 월북을 돕는 등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돼 1986년 3월 유죄가 확정돼 형을 살았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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