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시행령’ 촉각
22일 한나라당 언론법 강행처리와 동시에 발표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 작업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느냐에 따라 방송의 공적기능 훼손 우려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지적이 많다.
방통위가 시청점유율 및 매체합산점유율 산정 논의 기구로 설치 예정인 미디어다양성위원회는 방통위 산하기구다. 논의 내용도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최종 결정한다. 최시중 위원장의 독주로 얼룩진 방통위 구조에선 신문의 방송 진입에 따른 사후규제 방안(시청·매체합산점유율 산정) 또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경우 ‘우세한 여론권력’ 형성을 막기 위해 1997년 설립된 ‘매체집중조사위원회’는 국가로부터 독립된 전문위원회다. 12명으로 구성된 위원들은 임무 수행 과정에서 어떤 외부적 지시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점유율 계산에 사용하는 수치도 규제기능이 유명무실한 ‘신문 구독률’(전체 가구 중 특정 신문 구독 비율)이 아닌 ‘발행부수’를 활용한다. 신문사 경영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풍토가 정착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기범 공공미디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 방통위 아래에 둬서는 위원회 역할 자체가 사회적으로 의문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위가 시행령에 명시할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상호진입 조건도 눈여겨봐야 한다. 한나라당이 현행 방송법의 양쪽 간 교차소유 금지 조항을 슬쩍 삭제한 데 따른 후속조처다. 방통위 관계자는 “아이피티브이(IPTV)가 플랫폼 시장에 들어온 마당에 지상파와 에스오 간에도 자유로운 자본 흐름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그러나 “지상파와 에스오의 교차소유 허용은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의 경계를 지워 방송의 공적 영역을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상파에겐 무료 보편서비스보다 케이블 재전송을 통한 이윤창출이란 ‘유혹의 길’이, 거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에겐 지역 민영방송을 흡수할 수 있는 ‘인수합병의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방송사가 주식·지분 소유 및 재산 출자·출연 규제 등을 위반했을 때 방송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하도록 한 현 허가·승인·등록 취소 규정(방송법 18조)의 강도를 광고중단과 허가유효 기간 단축 등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시행령에 담긴다. 기존 조항이 “너무 가혹하다”는 게 방통위의 개정 이유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조중동이 방송 진입 후 시장 정착이 가능하도록 탈법·위법 상황에 봉착할 수 있는 가지를 미리 쳐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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